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와 최진영, 시대를 넘어 이어나가는 여자들의 사랑의 실험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와 최진영,시대를 넘어 이어나가는 여자들의 사랑의 실험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가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또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 지하련, 이선희 등 근대 대표 여성 작가들의 중요 작품을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변주함으로써, 근대 여성 작가의 마땅한 제 위치를 찾아내고,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현대 작가가 어떻게 당당히 길을 내어 그 궤적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는 백신애 작가와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담았다. 백신애는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실향민들을 그린 「꺼래이」(1934),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음에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심정을 담아낸 「광인수기」(1938) 등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수십 편의 소설과 수필 및 기행문 등을 남겼다. 또한 「아름다운 노을」에서는 소년을 사랑하는 화가를 통해 여성의 애욕을 그려내는 등 민중의 궁핍한 삶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여성의 능동성을 금기하는 사회적 억압을 의문시하는 데까지 다양한 문제에 걸쳐 있었다.최진영은 제13회 백신애문학상 수상자로, 여성, 비정규직, 실업 청년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비롯해, 죽은 연인의 몸을 먹는 애도의 방식을 통한 처절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구의 증명』)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덮은 혼란 속 두 여자의 로맨스(『해가 지는 곳으로』),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일기(『이제야 언니에게』) 등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 자기 삶을 찾아가며 끝까지 살아내는 방식을 그려냈다. 이 책에 실린 백신애의 소설 「광인수기」(1938), 「혼명에서」(1939), 「아름다운 노을」(1939)은 작가의 생애 마지막에 쓴 후기 주요 작품으로, 실제로 이혼과 고통스러운 투병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발표된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전향 지식인의 부인으로서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며 미쳐버린 여성이거나, 가부장제 가족제도로부터의 탈피를 부르짖는 이혼한 신여성이거나, 13세 연하의 소년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하려는 화가이다. 표제작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최진영은 백신애가 백 년 전에 제기했던 여성 억압의 문제를 “사랑이 주는 다정함과 위안, 설렘과 따뜻함”으로 풀어낸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백신애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강렬한 정념에 이끌리는 사랑이 아닌 “서서히 사로잡히는” 사랑을 그린다. 사십 대 여성과 이십 대 여성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금지된 욕망’도 ‘파격적인’ 무엇도 아니기에 “가장 편안하고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두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백신애가 살던 백 년 전과 동일하게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여성을 비롯하여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공포”와 멀리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은 “직장과 가정이 주는 피로감” 안에서 나를 나이게 하는 자유로운 순간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반짝 빛을 내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백신애가 선택했던 사랑의 ‘정체’와 최진영이 선택한 사랑의 ‘힘’이, 그리고 두 사람이 그려낸 ‘사랑의 연대’가 “천천히,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며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현역 작가 23인의 소설 생각”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겐 소설이 필요합니다”현역 작가 23인의 소설 생각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가 출간되었다. 김사과, 김엄지, 김이설, 박민정, 박솔뫼, 백민석, 손보미, 오한기, 임현, 전성태, 정소현,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천희란, 최수철, 최정나, 최진영, 하성란, 한유주, 한은형, 한정현, 함정임 등 한국 대표 소설가 23인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작가정신 창립 35주년을 맞아 기획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소설가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관통하는지, 그들의 ‘작가정신’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을 쓸 때의 생각과 마음부터 창작 과정 및 작가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모든 것’을 담았다. 23인 작가들의 소설 생각은 그들이 쓰는 소설만큼이나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자유롭고 다채롭다. 소설을 쓰는 데 필수적인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임현), 소설을 위한 낙서와 시적 단상들(정용준), 지금과는 다른 이해의 건너편으로 이동하기 위한 소설 작법(천희란),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필요한 ‘인정’과 ‘단념’(최진영), 여성으로서의 공포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불안을 형상화한 소설의 주제(하성란), 무언가에 미쳐 열중하는 사람들이 있는 소설이 잘 써지는 자리(한은형) 등 한국 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이루고 있는 작가들의 진솔하면서도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점은 글과 함께 어우러진 사진이다. 해당 글의 작가들이 대부분 손수 찍어 제공한 사진들은 책상과 책장, 집필 도구 등이 담긴 작업실 풍경부터 소설을 쓰기 전이나 쓰는 중에 자주 찾는 곳, 글쓰기에 영감을 준 사물과 작가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어떤 공간에서 글을 쓰고 읽으며, 어떤 길을 걷고 생각하는지 독자와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우리는 왜 소설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가. 또한 소설은 작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떤 마진, 즉 ‘이익’을 남기는 걸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꿈을 꿀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꿈’과 ‘이익’은 언뜻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유한한 존재로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나, 다른 삶,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것만큼 가치로운 이윤이 또 있을까. 최진영 작가의 말대로 우리는 “소설을 통해 꿈꿀 수 있다, 계속하여 꿈꿀 수 있다”. 우리와 함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소설가들이 우리 곁에 있는 한.
서핑하는 정신
“너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 필요는 없어. 너만 알면 돼”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한은형 소설 내가 나로 살기 위한, 한겨울의 파도타기
“너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 필요는 없어. 너만 알면 돼”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 한은형 소설내가 나로 살기 위한, 한겨울의 파도타기 일상에 숨은 낯설고 매혹적인 삶의 이면을 이야기하는 소설가 한은형의 『서핑하는 정신』이 <소설, 향> 일곱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서핑하는 정신』은 다국적 스타트업 기업을 다니는 직장인 여성 ‘나’의 한겨울 서핑 도전기를 작가 특유의 감성과 톡톡 튀는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권태롭고 황폐하며, 절박하고 고독한 “인물 군상을 질서정연한 플롯 속에 우아하고 첨예한 방식으로 담아”낸(소설가 정이현) 단편들이 담긴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출생의 비밀’과 ‘자살’이라는 화두를 다루며 “화가의 문체와 철학자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소설”(문학평론가 정여울)이라는 평가를 받은 첫 장편 『거짓말』, ‘맥도날드 할머니’로 알려진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한 두 번째 장편 『레이디 맥도날드』 등 한은형 작가는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출간되는 소설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굳건히 해왔다. 『서핑하는 정신』은 파도타기 스포츠의 일종인 ‘서핑’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에서 실시간 재생되는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을 따듯한 필치로, 그러나 사실감 있게 담아낸다. 하루하루에 진심을 다해 살았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럼에도 나를 나이게 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온화한 웃음을 닮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소설은 따스하고 다정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저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보통 이상으로 애쓰고, 보통 이상으로 힘들어하는 ‘보통 사람’들을 향해서. 작가는 “그 힘듦을 잠시 다독거려는 주는 작은 호사”와 같이 이 소설을 우리에게 건넨다. 다채로운 맛의 크래프트 맥주나 둥둥 파도 위에 떠 있는 서핑보드처럼. 산뜻하고 가벼우면서도 균형감 있게, 『서핑하는 정신』은 우리 마음 가장 가까운 어딘가에 부드럽게 안착하고 있다. 한 번쯤은 온화한 웃음을 닮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라운지 음악처럼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그런 소설을. 그 나른한 기운에 둥둥 떠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로운 소설을 말이다._‘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 향>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제1세대 ‘소설향’에 이어 제2세대 ‘소설, 향’을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다.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통해,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0 영 ZERO 零(<소설, 향> 첫 번째)
〈소설, 향〉 시리즈 첫 번째 김사과의 『0 영 ZERO 零』 어텀 에디션 출간, 선善도 악惡도 교훈도 없는, 이 세계는 텅 빈 ‘제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그것은 진실이다.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소설, 향〉 시리즈 첫 번째 김사과의 『0 영 ZERO 零』 어텀 에디션 출간,선善도 악惡도 교훈도 없는, 이 세계는 텅 빈 ‘제로’다! 작가정신 〈소설, 향〉 시리즈의 문을 연 첫 작품,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의 어텀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전위적인 서사, 파격적인 형식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낯설게 인지하게끔 만드는 작가 김사과. 폭력과 범죄, 자본과 권력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양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거칠 것 없이 파멸까지 나아가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김사과 월드’는 이제 이 세계의 균열과 모순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더욱 확장된 시야로 비추며, 새로운 환상이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바 있다. 『0 영 ZERO 零』에서 김사과가 선보이는 것은 더욱 사소하고, 더더욱 은밀해서 명확히 짚어내고 명명할 수조차 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이, 특수한 악惡함이 평범성으로 전환되는 도시의 익명성에 숨어 소리 없이 이 한 사람의 생 전체를 휘감고 무너뜨리는 방식에 대해서다.『0 영 ZERO 零』의 주인공인 ‘나’는 타인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먹잇감이 되어 망가지기 전에 먼저 타인을 내외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뿐이다. 한쪽이 포식자가 됨에 따라 다른 한쪽이 피식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에서 ‘나’는 사소하고도 은밀한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림에 따라 살아남고자 한다. 마치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한 태도로 이 세계의 부질없음과, 그러므로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독자를 향한 유혹의 밀어蜜語처럼 소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이 책의 말미에는 김사과 작가와 황예인 평론가의 대담이 수록되었다.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김사과의 문제적인 인물과 폭력적인 일상사에 대하여 보다 열린 지평에서 논의하는 장으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해석보다는 ‘나’의 세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식인하는 세계관 내에서 악이 곧 구원이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사유한다. 작가정신 <소설, 향>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욕조가 놓인 방 (예스24 단독 리커버 에디션)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사랑’에 관한 이승우의 오랜 탐구, 그 서문이 되는 작품!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사랑’에 관한 이승우의 오랜 탐구, 그 서문이 되는 작품! 신과 인간의 관계를 통한 기독교적 구원의 문제부터 인간 내면의 불안과 욕망까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문학적 폭과 깊이를 선보이고 있는 작가, 이승우의 『욕조가 놓인 방』이 출간되었다. 2006년 작가정신 ‘소설향’으로 처음 출간된 이후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되어 해외에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욕조가 놓인 방』은 ‘사랑’에 관한 오랜 탐색을 보여준 이승우 소설의 원점이자 서문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매 순간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자기합리화와 명분 없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인간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 이 소설은 의지가 욕망을 제압해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며, 혼자 있을 때조차도 욕망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감정을 숨긴 채 연기하는 현대인의 비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자에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지닌 한 여자가 다가온다. 그녀는 방 한가운데 욕조를 놓아두고, 밤마다 그곳에서 자신의 상처를 불러내 어루만진다. 남자는 욕조가 놓인 그녀의 방을 드나들지만, 끝내 그녀의 상처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욕조가 놓인 방』은 인간이 사랑을 통해 구원에 다다를 수 없는 이유와 일상의 울타리로부터 탈주할 수 없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물으며, 사랑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이승우 작가는 1993년 『生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받으며 대체 불가능한 문학 세계를 성취해왔다.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이승우를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지목했고, 프랑스 최고의 페미나문학상 외국 문학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르는 등 세계적으로도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우리 문학으로서는 드물게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글쓰기는 언제나 또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환기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예테보리 쌍쌍바』 이후 7년, 한층 더 매니악해진 극한의 생존과 유머 “살아남으면 좋은 평점 부탁하네!”
박상 작가 7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반대하고, 반성하고, 반항하다!……뭐, 이런 작가도 한 명쯤 있으면 어떤가? 몹시 웃기면서도 짙은 페이소스를 담은 작품들을 발표해온 박상 작가의 7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이 출간되었다. 김밥집 아들 이원식이 전설의 요리사 조반니가 숨겨놓은 궁극의 레시피를 찾아가는 기상천외한 모험기를 그린 작품이다. 박상 작가는 그동안 야구 젬병 이원식이 야구 고수로 거듭나는 과정을 스피드하게 그려낸 『말이 되냐』, ‘롹정신’으로 무장한 꿈 많은 청춘들을 위한 현실 초월 멜로디 『15번 진짜 안 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맨송맨송한 세상과의 뜨거운 한판승 『예테보리 쌍쌍바』 등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그려왔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의 주인공은 엽기적인 쇄국주의 국가 ‘삼탈리아’에 밀입국한 요리사 이원식이다. 그는 전설적인 요리사 조반니의 비밀 레시피를 구하러 ‘삼탈리아’에 왔다. 직접 경험해보니 의외로 유머러스한 나라 삼탈리아에서 시(詩)가 주류문화이자, 화폐가 되기도 하는 신기한 현상을 목도한 그는 잃었던 시심을 되찾아가지만 시를 내놓으라며 위협하는 소년 갱단에게 쫓기기도 한다. 그는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가져온 시집들과 요리 실력을 통해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반니의 레시피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사차원 정신세계를 가진 에밀리의 선술집에 잠시 기거하면서 시가 보여주는 우주의 사차원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다. 과거 숱하게 무너지고 재기하기를 반복하며 요리를 배워온 이원식은 음식을 정성껏 만들 때 느꼈던 시학이 수학, 물리학처럼 우주의 시공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깨닫게 되고, 핵심적인 키워드를 쥐고 있는 조반니의 레시피를 향한 모험을 이어나간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엄숙하고, 고상하고, 훌륭한 소설들 사이에서 기꺼이 ‘광대’로 돌아가고자 한다. 여기서 ‘광대’란 단지 웃기려는 사람으로 한정짓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가장 우아한 게 유머” 같다는 박상 작가가 끈질기게 구사하는 ‘유머’는 반대하고 반성하고 반항하는 행위로서의 ‘유머’다. 우월감으로 뻣뻣해지는 어깨에 ‘반대’하고, 재미없고 딱딱한 소설에 대해 ‘반성’하며, 전형적이고 식상한 갈등에 ‘반항’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이번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에서 시도한 형식이 바로 부조리 문학이다. 부조리 문학은, 2차 대전 이후 커다란 상실감과 정신적 방황을 경험한 사람들이 비틀린 심정으로 표현하던 아방가르드 드라마로서, 깊은 사유를 동반한 문학성을 추구하기보단 반대로 그 전통을 조롱하면서 우스꽝스러워지는 아이러니를 추구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은 소설 속 갖가지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통해 부조리 문학의 질문들이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인류 문명에 대한 무력감과 혼란을 다시 느끼게 된 지금, 인간만이 즐길 수 있는 ‘읽기의 유흥’, 즉 이야기의 고유한 재미에 흠뻑 빠져들게 해준다. 부조리 문학의 현대적 응용과도 같은 삼탈리아 모험기, 과연 이원식은 조반니가 살던 미지의 마을을 찾아내고 전설의 레시피를 만날 수 있을까.
인간만세
“인간 이꼬르 똥입니다. 이건 인간만의 이야기입니다! ……잊었나? 나는 휴머니스트라니까.”
실종된 세계, 실종된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인간만세’를 외치는 오한기식 ‘진짜’ 리얼리티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오한기 신작 한국 문학에서 가장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작가 대열의 선두에 선 오한기의 『인간만세』가 <소설, 향>의 다섯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답십리도서관 상주 작가 경험기를 토대로 한 『인간만세』는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소설의 관습과 문법을 비틀며 ‘소설 이후의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향해 종횡무진 나아간다. 소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탁으로, 작품을 써야 하는 소설가 ‘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설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간 있었던 도서관에서의 일화들을 떠올리고 있는데, 그의 앞에는 중대한 두 가지 문제가 놓여 있다. 바로 강연용 무선마이크를 분실했다는 것과 어디선가 계속 ‘똥!’이라는 외침이 들려온다는 것. 상주 작가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마이크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이 괴이한 외침은 도대체 누구의 짓일까.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두고 무척이나 괴로워하는데, 상주 작가를 그만두면 될 일이겠지만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문학이란 과연 무엇이고, 인간 존재란 또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들이 ‘똥!’이라는 단말마로 요약되고 마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나’는 다름 아닌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꾸준히 좇아온 독자라면 이번에도 ‘쓰는 화자’를 내세운 오한기의 더욱 집요하고도 꾸준한 탐색이 놀랍고도 반가울 것이며, 처음 만나는 독자라도 시대착오적인 등장인물들, 어처구니없지만 정교한 상상력, 비논리를 논리적으로 끌어가는 내러티브와 기묘한 핍진성을 마주하며 ‘소설 그 자체로서의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사유와 감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201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오한기 작가는 3년 만에 첫 소설집 『의인법』을 출간하고, 이후 홍학으로 변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 『홍학이 된 남자』,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새로운 역사적 적대’를 창조해낸 『나는 자급자족한다』, 타자-되기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가정법』 등을 펴내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적극적이고 끈질긴 ‘소설가 소설’의 발신처”(문학평론가 한영인), “앞으로의 소설이 나아가야 할 한 방향”이라는 호평을 받아온 오한기 작가는 이번 신작 소설 『인간만세』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또 한번 증명해낸다.
겨울장면
기억과 망각 사이를 유영하는 R, 그리고 R, 그리고……… 우리, 수많은 R 중첩되는 장면들 속에서 어느 곳에도 발붙이지 못한 채 그저 부유하는 김엄지식 인간들의 세계
의식과 무의식,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서 포착됨을 거부하는 문체와 평면적이고 반복적인 서사로 특유의 작품 세계를 이어온 작가 김엄지. 김엄지의 신간 소설 『겨울장면』이 출간되었다. 욕망이나 사건, 내면의 사고思考가 결여된 인물들을 통해 더 이상 미래를 도모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소설집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평면적인 일상의 극단적인 반복을 내보인 『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삶에서의 변화, 미래로의 이동, 타인을 통한 낙관을 차단당한 ‘산송장’과도 같은 인간 존재를 그린 『폭죽무덤』까지, 김엄지는 2010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출간되는 소설마다 본인의 스타일을 굳건히 해왔다. 이번 『겨울장면』은 기억을 잃었으나 어떤 기억을 잃었는지조차 모르는, 그저 그 상태로“멈춰 있는 것이 최선”인 ‘R’이라는 인물을 통해 진행된다. 기억과 망각 사이 어느 한 곳에 발붙이지 못한 채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R’. 김엄지의 소설에서 유구히 존재해온, ‘그저 있는’ 김엄지식의 인간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한 ‘R’을 통해 김엄지는 우리의 모습을 작품 위에 겹쳐놓는다.『겨울장면』에는 김엄지 작가의 에세이 ‘몇 하루’가 수록되어 있다. 작품을 집필하며 일상에서 길어 올린 장면들을 작가 특유의 산문체로 써 내려간 것으로, 건조하고 단조로운 생활 사이사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툭 튀어나오는 작가의 예리한 현실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특별판)
박완서 작가 유일 콩트집 타계 10주기 특별판! “사건은 흔해도 감동은 귀해” 사랑과 자유를 꿈꿨던 한 사람, 박완서 아직 끝나지 않은 46편의 이야기들
박완서 작가 유일 콩트집 타계 10주기 특별판! “사건은 흔해도 감동은 귀해”사랑과 자유를 꿈꿨던 한 사람, 박완서아직 끝나지 않은 46편의 이야기들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면, 나는 늘 박완서 선생님을 떠올린다.(강화길)”, “인생은 나의 것, 활자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해준 분.(박민정)”, “박완서 소설가는 한국어로 소설을 읽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읽힐 것이다.(정세랑)”, “박완서 작가는 그 자체로 한국 문단의 아주 중요한 꿈이다.(정용준)” “소설의 집, 소설의 어머니”, 고(故) 박완서 작가의 최초이자 유일한 짧은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의 리커버 특별판이 출간되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1970년대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담아내고 평범한 삶 속에 숨어 있는 기막힌 인생의 낌새들을 포착한 작품이다. 짧은 분량의 단숨에 읽히는 이야기지만 여운의 뒷맛은 더 길고 강하다. 자기기만과 허위의식에 찬 속물근성이 까발려진 듯해 뜨끔하고, 목표의식 없이 내달리는 헛헛한 내면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던 이웃 간의 정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작금의 사태가 떠올라 씁쓸하고,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때 그 사람」, 「마른 꽃잎의 추억」,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그림의 가위」, 「어떤 유린」 등 이 짧은 소설들은 평생에 걸쳐 작가의 화두였던 ‘사랑과 자유’에 대한 희구를 때론 낭만적으로, 자주 희망적으로 펼쳐 보인다. 사랑과 자유를 꿈꾸는 한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은, 즉 우리의 이웃들은 진정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소소한 해프닝을 들여다보면서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성공의 진정한 기준은 무엇인지를 되묻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 앞에 산재되어 있는 분단 상황, 자본주의, 여성과 노인 문제 등 다양하고 폭넓은 문제제기를 던진다. 작가정신은 고(故)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기를 맞아 그동안 오랜 사랑을 받아온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재단장하여, 그의 콩트를 기억하는 독자들에게는 소장본의 가치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박완서 콩트의 정수를 맛보는 계기를 마련코자 했다. “한국어로 소설을 읽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읽힐 것”이라는 바람과 같이, 이 책은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뭉클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0 영 ZERO 零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게 전부예요, 여러분.”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포식자들의 속삭임 은밀하게 일어나는 투명한 학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가 텅 빈 ‘제로’라는 것에 대하여
작가정신 〈소설, 향〉은 1998년 “소설의 향기, 소설의 본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첫선을 보인 ‘소설향’을 리뉴얼해 선보이는 중편소설 시리즈로, “소설의 본향, 소설의 영향, 소설의 방향”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한다. ‘향’이 가진 다양한 의미처럼 소설 한 편 한 편이 누군가에는 즐거움이자 위로로, 때로는 성찰이자 반성으로 서술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작품은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이다.전위적인 서사, 파격적인 형식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낯설게 인지하게끔 만드는 작가 김사과. 폭력과 범죄, 자본과 권력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양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거칠 것 없이 파멸까지 나아가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김사과 월드’는 이제 이 세계의 균열과 모순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더욱 확장된 시야로 비추며, 새로운 환상이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바 있다. 이번 『0 영 ZERO 零』에서 김사과가 선보이는 것은 더욱 사소하고, 더더욱 은밀해서 명확히 짚어내고 명명할 수조차 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이, 특수한 악惡함이 평범성으로 전환되는 도시의 익명성에 숨어 소리 없이 이 한 사람의 생 전체를 휘감고 무너뜨리는 방식에 대해서다.『0 영 ZERO 零』의 주인공인 ‘나’는 타인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먹잇감이 되어 망가지기 전에 먼저 타인을 내외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뿐이다. 한쪽이 포식자가 됨에 따라 다른 한쪽이 피식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에서 ‘나’는 사소하고도 은밀한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림에 따라 살아남고자 한다. 마치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한 태도로 이 세계의 부질없음과, 그러므로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독자를 향한 유혹의 밀어蜜語처럼 소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이번 김사과의 『0 영 ZERO 零』에는 김사과와 황예인 평론가의 대담이 수록되었다.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김사과의 문제적인 인물과 폭력적인 일상사에 대하여 보다 열린 지평에서 논의하는 기회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해석보다는 ‘나’의 세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식인하는 세계관 내에서 악이 곧 구원이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사유한다. 작가정신 <소설, 향>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