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소년』은 박완서 작가가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써낸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수록된 짧은 소설을 거친 듯하지만 섬세하고, 세밀하다 못해 치밀하기까지 한 판화 그림책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사회 현상을 은유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물질에 대한 탐욕과 거짓된 가치 판단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 환경의 귀중함, 진실한 삶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 노인과 한 아이가 황폐하고 낯선 길을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욕심과 무지가 불러온 전염병으로 살던 땅을 잃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으러 길을 나선 것입니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어느 해 질 녘, 노인과 소년의 눈앞에 새로운 고장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고장은 노인과 소년이 꿈꿔 온 곳이 아닙니다. 참된 말이 적힌 책을 태워 공장을 돌려 돈을 벌고, 거짓을 강요하는 임금이 지도자인 사회, 모든 먹을 것에 독이 들었을 만큼 자연이 훼손된 해로운 고장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노인은 소년의 손을 잡고 또 다른 고장을 향해 떠납니다. 노인과 소년은 언제쯤 기나긴 여행을 끝낼까요? 이들은 과연 꿈꾸었던 세상을 만날 수는 있을까요?
『노인과 소년』은 간결하고도 인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탐욕과 거짓이 만연한 인간의 현대 사회를 꼬집고, 대자연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일깨웁니다. 또한 삶의 보편적인 가치와 함께 인간다운 사회와 삶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글|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습니다.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였습니다. 1970년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등이 있고, 단편집으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어른 노릇 사람 노릇』 등이, 짧은 소설집으로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 있고, 동화집으로 『부숭이는 힘이 세다』 『자전거 도둑』 등이, 장편동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등이 있습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2011년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그림| 김명석
1983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배재대학교에서 환경조각을 전공했습니다. 2010년 그림책 『빨간 등대』로 눈높이 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그림책 『행복한 두더지』로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밖에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따뜻한 나라의 북극곰』 등이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짧은 소설, 그림책으로 만난다!
『노인과 소년』은 우리 문단의 어머니, 박완서 작가가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써낸 48편의 짧은 소설을 모은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수록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산업화가 진행되어 가던 1970년대는 현대적 자본주의 질서가 갖춰짐과 동시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양산된 시기였습니다. 아파트 건설, 부동산 투기 등의 개발 열풍이 불어 닥치며 자연은 파괴되어 갔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인간관계 또한 차츰 순수성을 잃어 갔습니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서 작가는 보통 사람들이 겪는 생활 속 소소한 사건들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적 병리 현상들을 예리하게 들춰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인간 본연의 도리를 깨우치도록 했습니다. 1970년대의 이야기이지만,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작품 속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어른들은 물론이고 우리 아이들까지 나와 우리 사회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 가운데 『노인과 소년』은 사회 현상을 은유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드러낸 유일한 작품으로, 물질에 대한 탐욕과 거짓된 가치 판단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 환경의 귀중함, 진실한 삶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손에 파괴된 자연,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회와
맞닥뜨린 노인과 소년의 길고도 먼 여정
노인과 아이가 정처 없이 길을 걷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들이 걷는 길은 황폐하고 낯설어, 마치 세상의 끝에 다가선 듯합니다. 그들이 길을 떠난 이유는 단 한 가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무지가 불러온 전염병이 노인과 소년만 남기고 모든 것을 휩쓸어가 버렸습니다. 살던 땅을 잃은 절망과 슬픔 속에서 노인과 아이는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걷습니다.
코는 무뎌지고, 심장은 딱딱해진 노인은 이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삶의 근본마저 빼앗긴 어린 소년을 위해서 말이지요. 마음에 티끌만큼의 때조차 묻지 않은 순진무결한 아이가 살아야 할 곳은 전염병이 휩쓴 고장도, 거짓된 말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사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순수함과 풍요로운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참된 곳에서 아이가 미래를 펼칠 수 있도록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얼마나 그렇게 떠돌아다녔을까. 타는 듯한 노을이 빨갛게 세상을 물들일 해 질 녘, 노인과 소년의 눈앞에 새로운 고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아이는 새로운 고장에 다가서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노인이 맡지 못한 책 타는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독을 알아챕니다. 참된 말이 적힌 책을 태워 공장을 돌려 돈을 벌고, 모든 먹을 것에 사람을 죽이는 독이 들어 있고…….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본 새로운 고장은 그릇된 인간들에 의해 자연마저 파괴된 해로운 고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잘못이 아니라, 어리석고 겁 없는 인간들이 저지른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잘못 또한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새로운 고장으로 다가섭니다.
노인과 소년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때, 노인과 아이는 죄를 짓고 벌을 피하기 위해 도망가는 고장 사람을 만나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 고장 임금님은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임금님의 거짓말을 따라 하도록 엄명을 내립니다. 그래서 감자를 감자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고 감자를 양파라고 해야만 참말이 되는 거랍니다.”
새로운 고장은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사회, 거짓을 강요하는 사회였던 것입니다. 결국 노인은 다시금 아이의 손을 잡고 또 다른 고장으로 쓸쓸하 떠나갑니다. 이곳 또한 자연과 문명이 조화로운 세상, 자연이 본 모습을 찾아 풍요가 깃든 세상, 아이가 살 만한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노인과 소년은 언제쯤 기나긴 여행을 끝내게 될까요? 이들은 과연 꿈꾸었던 세상을 만날 수는 있을까요? 이렇게 작가는 간결하고도 인상적인 이야기 속에 탐욕과 거짓이 만연한 인간의 현대 사회를 꼬집고, 대자연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일깨웁니다. 『노인과 소년』은 마치 『탈무드』의 한 귀퉁이를 들춘 듯 삶의 보편적인 가치와 함께 인간다운 사회와 삶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판화에 담긴 어둠과 빛, 절망과 희망
거친 듯하지만 섬세하고, 세밀하다 못해 치밀하기까지 한 그림 또한 강한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일말의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이야기 속 세상이 눈높이 아동문학상과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한 김명석 그림 작가의 손에 판화로 명료하고도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삭막한 자연, 그 안에서 천천히 독에 잠식되어 가는 고장과 거짓을 강요하는 임금까지, 다채롭고 화려한 장면을 대비되는 색감으로 과감하게 표현해 이야기를 보다 극적으로 이끌어 가며, 현대적이면서도 이국적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낮, 인간들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삭막한 길을 걷고 또 걷는 노인과 소년의 모습이 담긴 표지부터 노을이 지고, 사위가 어둠으로 뒤덮여 별이 총총히 떠오르는 밤, 이들이 또 다른 고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까지 시간 흐름이 판화 특유의 질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노인과 소년이 맞닥뜨릴 길은 지난 고장만큼이나 어둡고 암담할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이 지나면 어둠이 걷히고 동이 터 올 것입니다. 그리고 노인과 소년은 황량한 길의 끝에서 꿈꾸는 고장, 자연은 티 없이 맑고, 거짓이 아닌 참말이 가치를 인정받는 올바른 사회, 인간성을 회복한 사회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시리즈 소개
<물구나무 세상보기> 시리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나, 우리 집, 우리 가족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웃, 지역사회, 나라, 지구촌까지 넓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요. 렌즈에 따라 카메라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새로운 시각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물구나무 세상보기>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자의식과 논리력이 발달하며 감정 또한 점차 성숙해지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시리즈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책을 읽고 열린 마음으로 책 속 세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우리 작가들의 풍부한 감성이 담긴 이야기와 빼어난 삽화로 작품을 구성했습니다. <물구나무 세상보기> 시리즈는 물구나무를 서며 노는 듯이 쉽게 보다 넓은 시각과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