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날 대신해

‘나쁜 피’라 불린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과
여성이 처한 현대의 공포를 그려낸 박민정 작가가 만나다


  • 저자김명순, 박민정
  • 출간일2024-06-18
  • 페이지344쪽
  • 가격17000원
  • 판형115*183mm
  • ISBN979-11-6026-344-2
  • 분야소설 > 한국문학
책 소개

 

‘나쁜 피’라 불린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과
여성이 처한 현대의 공포를 그려낸 박민정 작가가 만나다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이 데뷔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소설, 잇다’는 이 시점에서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백 년 시공을 뛰어넘는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의 또 다른 근원과 현재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그 다섯 번째 책으로, 근대 여성 문학의 맨 앞에 놓이는 이름 김명순과 한국 사회의 혐오와 폭력의 역사를 써온 박민정의 작품을 담은 『천사가 날 대신해』가 출간되었다. ‘소설, 잇다’는 박화성과 박서련, 강경애와 한유주, 나혜석과 백수린의 소설들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 최초로 현상문예에 당선된 여성 소설가 김명순은 시인이자 기자, 평론가, 번역가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작가였다. 그러나 세상은 ‘첩의 딸’이라는 출신 배경을 문제 삼으며 ‘나쁜 피’가 흐르는 부정한 여성으로 규정하려 했고, 남성이 주류인 문단에서 그의 행보는 ‘학대’에 가까운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봉건적인 가부장제에 대한 환멸은 김명순의 삶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사랑과 자유에 기반한 연애를 갈망했으며 대등하고 주체적인 관계만이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의 청년 세대와 여성들이 놓인 정치, 젠더, 경제, 역사적 조건을 꾸준하게 탐구해온 소설가”(인아영 평론가)라는 평가를 받은 박민정은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등을 받으며 그 문학적 성취를 꾸준히 인정받아 온 작가다. 첫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에서 IMF 이후 세대 간의 갈등을 그렸던 그는 항공사 승무원의 죽음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고발하고(『미스 플라이트』), 일상 곳곳에 자리 한 성폭력과 성차별의 문제를 치밀한 사유와 입체적 서사로 그려왔다.(『바비의 분위기』)

『천사가 날 대신해』에는 김명순의 데뷔작 「의심의 소녀」(1917)와 중편 「돌아다볼 때」(1924), 「외로운 사람들」(1924)이 수록되어 있다. 세 편의 소설은 결혼과 연애, 신여성의 삶, 자전적 글쓰기로 대표되는 김명순 작품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을에 홀연히 나타난 아리따운 소녀를 둘러싼 추측과 소문을 통해 학대받는 여성의 삶을 묘사하고,(「의심의 소녀」) 기생 출신 소실의 딸을 주인공으로 하여 가부장제의 모순을 고발하기도 하며,(「돌아다볼 때」) 최씨 가문 네 남매의 삶을 중심으로 사랑과 이상의 관계를 묻기도 한다.(「외로운 사람들」)
박민정의 소설 「천사가 날 대신해」는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혐오’를 현대의 시각에서 보다 복잡하고 교묘해진 양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김명순에게 ‘절대적인 외로움’으로 표출되었던 그것은 박민정에게는 ‘공포’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천사가 날 대신해」에서 ‘나’는 오랜 동창생 세윤의 죽음을 마주하고 큰 혼란에 빠진다. 전남편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려 했던 세윤이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세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인지. 그러나 소설은 죽음에 관한 진실을 규명하는 이야기에서는 비켜서 있으며, 그 죽음의 원인이 되는 우리의 “현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섬세하고 집요한 의심 속에서 살펴”본다. (박인성 평론가)

박민정 작가는 이번 작업의 소회를 담은 에세이에서 “‘의심의 아이’가 ‘불쌍한 아이’로 귀결되기까지의 이야기”인 「의심의 소녀」를 의식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써온 자신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아이 역시 바로 이 ‘의심의 소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더불어서, 김명순의 자전적 글쓰기는 그에게 가하는 세상의 오해와 모욕을 드러내기 위한 ‘서술 전략’이었음을 짚어내며 그의 철저한 작가정신을 기리고 있다.

 

저자 소개

김명순

1896년 평안남도 평양군 융덕면에서 태어났다. 1911년 서울 진명여학교 보통과를 졸업하고, 2년 뒤 일본으로 가 국정여학교에 편입했으나 중퇴 후 귀국, 1917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청춘》 현상문예에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18년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올랐으며, 《창조》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25년경 《매일신보》 기자를 지내기도 했다. 소설 「칠면조」(1921) 「돌아다볼 때」(1924) 「외로운 사람들」(1924) 「탄실이와 주영이」(1924) 「꿈 묻는 날 밤」(1925) 「손님」(1926) 「모르는 사람같이」(1929), 시 「동경」 「옛날의 노래여」 「석공의 노래」 「시로 쓴 반생기」, 시극 「조로의 화몽」 등 개작을 포함하여 170여 편의 소설, 시, 수필, 희곡을 남겼다. 그 밖에도 창작집 『생명의 과실』(1925)과 『애인의 선물』(1930?)을 펴냈으며, 에드거 앨런 포의 『상봉』,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외로운 사람들』을 번역했다. 1951년경 도쿄 아오야마 뇌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민정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바비의 분위기』,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백년해로외전』, 중편소설 『서독 이모』, 산문집 『잊지 않음』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김명순
소설
「의심의 소녀」
「돌아다볼 때」
「외로운 사람들」

박민정
소설
「천사가 날 대신해」
에세이
「때가 이르면 굳은 바위도 가슴을 열어」

해설
가장 두려운 적과 싸우는 작가들_박인성(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 김명순 >

‘훌륭한 사람’이 아닌 ‘자유로운 인간’을 향하다
김명순 대표 중단편 「의심의 소녀」, 「돌아다볼 때」, 「외로운 사람들」

김명순의 데뷔작 「의심의 소녀」에는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소녀가 등장한다. 2년 전, 평양 대동강 근처 동리에 아름다운 소녀 범네와 할아버지가 이사를 온다. 이사 온 이유를 밝히지 않고 동네 사람들과 교류를 피하는 탓에 둘은 관심거리가 되는데, 동리 근처에 한 신사가 나타난다. 이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는 갑자기 마을을 떠나고, 후에 신사가 범네의 아버지인 조 국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범네의 모친은 “평양성 내 유명한 미인”이자 “재산가의 독녀”로 조 국장과 결혼했으나 방탕한 남편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결국 병든 몸으로 자살하고 마는데, 범네는 곧 조 국장 첩의 표적이 되어 할아버지가 범네를 데리고 떠난 것이다. 결국 조 국장의 난행으로 인해 범네와 할아버지는 계속 표랑을 해야 한다.

「돌아다볼 때」의 주인공인 소련은 신여성으로, 평양에 강연을 하러 온 젊은 이학자 효순에게 호감을 느낀다. 사실 효순에겐 은순이라는 처가 있었으니, 둘 사이를 알아챈 은순은 소련의 고모인 류애덕 여사에게 그 사실을 전하고 소련의 결혼을 종용한다. 소련의 모친은 본처가 아닌 첩이었는데, 이 피를 물려받았을까 걱정하던 고모의 뜻에 따라 소련은 최병서와 결혼한다. 최병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계집을 상관하고” 소련을 학대하기도 하며, 병서 모친은 소련을 들볶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소련은 “자기의 노동과 수학과 사랑”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조선일보》 연재본에서 비극의 연원은 친모가 아니라 난봉꾼인 ‘아버지의 더러운 피’로, 소련은 ‘강철 같은 의식’과 ‘시원한 이성’에 의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 원전으로 삼은 『생명의 과실』 개작본에서는 자살을 택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되 효순과의 영적 연애를 그리는 미래지향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외로운 사람들」은 순희, 순철, 상철, 금희 등 최씨 가문 네 남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특히 순희와 순철의 삶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면서, 상호이해에 기반한 연애와 주체적 의지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신여성 순희는 사회학자인 정택과 함께 동경으로 떠난다. 순희와 정택에겐 각각 약혼자가 있었는데, 정택의 예식을 앞두고 도피행각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순희는 그곳에서 또 다른 사람을 연모하게 되고, 이에 순희와 정택은 결별하고 두 달 만에 돌아온다. 한편 순희의 동생 순철은 열네 살 되던 해 할머니의 뜻에 따라 두 살 연상인 복순과 결혼한다. 그러나 순철은 여순으로 유학을 가서 만난 청국의 영락한 왕녀 순영에게 이끌린다. 조선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순영은 순철의 애정을 갈구하지만, 순철은 자신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마침내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의탁할 데 없는 복순을 저버리지 않기로 결심하는데, 순철만을 기다리다 낙심한 순영은 점점 병색이 짙어간다.


< 박민정 >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선 선역도 악역도 여자야”
김명순 시대에 여성이 겪어야 했던 ‘절대적 외로움’을
현대 여성이 처한 ‘공포’로 써 내려가다

「천사가 날 대신해」는 친구의 죽음을 톺아보는 ‘나’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소설이다. ‘나’는 오랜 동창생 세윤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함께 보기로 한 JLTP 2급 시험을 일주일 남겨놓고 세윤은 사라져버렸다. 2년 전 이혼을 하고 새롭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기기 시작한 세윤의 일상 브이로그. 그런데 영상에는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과거 ‘나’의 학교 후배이자 현재 세윤의 직장 동료인 로사. 로사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알았던 ‘나’는 세윤에게 로사를 조심하라고 경고하지만 세윤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세윤은 죽기 며칠 전부터 계속 악몽에 시달린다고, 악몽에는 늘 로사가 등장한다고 말했다. 브이로그를 전부 다 돌려보고, 특히 로사가 나오는 장면을 유심히 들여다보지만 ‘나’는 지금 어떠한 새로운 진실도 찾아낼 수 없다.
「천사가 날 대신해」는 “온전히 애도되지도 의미화되지도 못하는 여성의 죽음”이 얼마나 “일상화, 보편화되어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박인성 평론가) 김명순의 소설에서 세상과 남성으로부터 이중의 소외를 받았던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를 이해받지 못하는 절대적 고독 속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박민정의 소설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이중의 소외 속에서 ‘죽음’에 이른다. 다만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은 이제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져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조차 어려워진다. 더욱이 작가는 그 원인이 특정한 외부 맥락 속에 있을 뿐 아니라 나 자신, 즉 ‘우리 내부’에 있을 가능성까지도 짚고 있다. 그것이 박민정이 바라보는 현대 여성이 처한 공포이기도 하다.


“김명순의 그 철저한 작가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그의 작품은 끝없이 읽혀야 한다”(박민정)

김명순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동시에 당시 문단과 사회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설명이 따라온다. 그는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희곡, 수필 등 170여 편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그에게는 몹시 ‘사나운 세상’이었지만, 굴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던 것이다. 박민정 작가는 이번 에세이에서 김명순 작가의 생애에 대해 말하고 해석하는 방식과 또 이를 작품에까지 개입하는 방식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작품 안에서 자신의 인생이 짓밟히는 ‘소외’와 ‘상실’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으면서도, 바로 그 점 때문에 ‘전략적으로’ 자전적 글쓰기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철저한 작가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명순 작가가 한 인간으로서 느꼈을 외로움을 우리는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온전히 그리고 끊임없이 읽히기를 기대한다. 김명순 작가의 옆, 아주 가까운 곳에 나란히 날을 세운 박민정 작가의 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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