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하여

다른 시간,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가
접속하고, 깊이 연루되고, 함께 걸어나가다

  • 저자김말봉, 박솔뫼
  • 출간일2024-01-25
  • 페이지168면
  • 가격15,000원
  • 판형115*183mm
  • ISBN979-11-6026-336-7
  • 분야소설 > 한국문학
책 소개

 

 

 

“순수 귀신을 몰아내라”, 대중소설가를 선언한 김말봉
우리 문학의 독창적이고 ‘희귀한’ 자리, 박솔뫼

다른 시간,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작가가
접속하고, 깊이 연루되고, 함께 걸어나가다

 




『기도를 위하여』에 실린 김말봉의 대표 단편 「망명녀」(1932), 「고행」(1935), 「편지」(1937)는 작가 특유의 통찰과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기생, 운동가, 아내, 애인 등 여성 인물들은 때로 나라를 위해 투신하거나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인습의 폐단을 고발한다. 기생이었던 주인공 순애가 사회주의 운동가로 변모하거나(「망명녀」), 불륜을 저지른 남성은 벽장 안에 갇혀 ‘수치’와 ‘굴욕’을 겪는다.(「고행」) 남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단 한 통의 편지로 여지없이 깨어져버리기도 한다.(「편지」) 세 편의 소설은 대중, 즉 민중들의 삶을 담백하고 명쾌하게 그려내면서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박솔뫼의 「기도를 위하여」는 김말봉의 데뷔작 「망명녀」의 뒷이야기를 이어 쓴 소설이다. 「기도를 위하여」는 「망명녀」의 최순애와 윤정섭(윤)이 옥중 혼례를 치르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혼례 후 윤숙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순애는 머지않아 목숨을 거둔다. 그러나 순애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두 사람과 함께인 채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은 김말봉의 주 본거지인 부산의 구도심을 산책하는 1인칭 화자의 서술이다. 이렇게 소설은 두 이야기가 교차되는 구성을 취하는데, 이는 주인공 순애를 기억하는 동시에 작가 김말봉을 기억하는 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파편적으로 흩어졌던 것들을 다시 연결하면서, 현재 우리가 발 붙인 세계에 대한 감각을 “새로이 갱신”한다. 김말봉 작품을 통해 박솔뫼가 읽어낸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은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걷도록 만드는 동력”(박서양 평론가)이 된다.

 

 

저자 소개

김말봉


190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 정신여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7년 귀국한 후 《중외일보》 기자로 재직하였으며, 1932년 김보옥이라는 필명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망명녀」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단편 「고행」「편지」 등을 발표하고 1935년 《동아일보》에 첫 장편 『밀림』을 연재했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 『찔레꽃』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다. 공창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박애원을 경영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57년 한국 최초의 여성 장로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문학가협회 대표위원을 지냈다. 『화려한 지옥』 『푸른 날개』 『생명』 『화관의 계절』 등 많은 장편소설을 연재, 발표했다. 1961년 2월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박솔뫼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여러 편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우리의 사람들』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장편소설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 『미래 산책 연습』 등이 있다.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김현문학패, 동리목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김말봉
소설
「망명녀」
「고행」
「편지」

박솔뫼
소설
「기도를 위하여」
에세이
「늘 한 번은 지금이 되니까」

해설
인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구원의 서사_박서양(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김말봉>



김말봉의 데뷔작 「망명녀」에는 “이때이다. 이 기회이다. 나도 사람이다”라고 스스로의 결심과 의지를 확인하는 한 여성이 등장한다. 명월관이라는 요리점에서 기생으로 일하는 산호주(최순애)는 차라리 ‘미치고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8년 전 여학교를 다니던 시절 형제를 맺었던 ‘허윤숙’이라는 자가 찾아와 산호주의 빚을 갚아주고 그를 데리고 떠난다. 허윤숙은 담배와 모르핀에 중독된 산호주를 예전의 순애로 되돌리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막상 순애를 되돌린 것은 허윤숙이 애인 윤정섭과 나누는 대화다. 반동분자, 소비에트, 남녀 기회 균등 등 호기심을 끄는 단어들에 사회운동을 향한 동경을 갖게 되고, 윤과 순애는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다. 점차 ‘동지’로서, 또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으며 순애는 나라에 목숨을 바치기로 한다. 결혼식 날, 윤에게서 소포가 오는데 어떤 위험한 물건을 전해달라는 내용이다. 순애는 자신이 몰래 그 소포를 전달하기로 결심하고 결혼식장을 떠난다.

「고행」은 불륜 행위를 성자의 ‘고행’으로 신성시하는 남성 인물의 모습을 통해 축첩의 부도덕성을 꼬집는다. ‘나’(남편)는 전에 기생이던 ‘미자’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있다. 미자와 그가 불륜 관계라는 것을 모르는 아내는 미자를 딱한 사연이 있는 친구의 누이동생으로 알고 안쓰럽게 생각하며 형제처럼 지낸다. 하루는 미자가 집에 찾아와 눈치를 주자 그는 결국 아내와의 나들이를 취소하고 미자를 찾아갔는데, 때마침 아내도 미자의 집에 심심하다며 찾아온다. 알몸으로 벽장에 숨어든 그는 사내의 바람을 정당화하다가도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무덥고 갑갑한 벽장 안에서 빈대와 벼룩의 공격에 참을 수 없는 요의마저 더해지고 시간은 계속 흐른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한계에 다다른 순간 아내가 집으로 가겠다고 나서고, 아내가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게 된 그는 급히 미자의 집을 떠난다. ‘나’는 결국 아내에 의해 고행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는다.

「편지」는 일부일처제라는 근대적 가족 개념이 확산하던 시기에 여성 인물 스스로에 의해 “낭만적 사랑의 판타지”(박서양 평론가)가 깨어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은희의 집에 ‘인순’이라는 이름으로 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지난번에 보내주신 돈은 잘 받았으나 부족하며, 부인과 자식이 있는 당신에게 이런 짐을 지우는 게 마음 아프고, 죄악을 짓는 듯하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은희는 남편에게 따져 물을 수 없다. 남편은 얼마 전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은희는 편지를 보내온 여자의 얼굴을 상상하며 회한과 질투에 휩싸였다가 금비녀를 팔아 편지를 보내온 쪽에 돈과 함께 보내며 집으로 들르라는 말을 전한다. 며칠 고대하고 있던 손님은 여자가 아닌 어린 남학생으로, 남편은 가난한 학생을 후원하고 있던 것이다. 은희는 인간이란 얼마나 천박한가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가보는 것 아무튼 계속 가보는 것 가보고 걸어보는 것”

박솔뫼의 작품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세계를 만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기도를 위하여」에서도 죽은 순애가 산 사람들의 세계로 ‘건너온다’. 순애는 윤과 옥중 혼례를 치른 뒤 윤숙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몸이 쇠약해져 곧 숨을 거둔다. 순애를 묻고 돌아와 앓던 윤숙은 병석에서 순애를 다시 만나고, 머지않아 윤도 순애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렇게 세 사람은 재회의 순간을 맞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윤숙은 여성들에 대한 교육 계몽을 실천하고자 부산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순애의 기일조차 가물가물하던 어느 날 윤숙은 “순애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기도를 한다. 윤숙은 생각한다. 이 기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인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위한 기도”라고. 또한 지금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기도이기도 하다고.



순수/통속의 잣대로 문학을 구분하던 시대에 과감히 대중소설가의 길을 걸었던 소설가. 여성의 지위 신장과 인권 보호에 앞장선 운동가. 그리고 한국 최초의 여성 장로, 김말봉. 김말봉은 소신을 지키고 실천하는 지식인이었음에도 그의 문학은 충분히 검토되지 못했다. 이번 ‘소설, 잇다’ 작업을 통해 김말봉 소설의 뒷이야기를 이어 쓴 박솔뫼는 에세이에서 “시간은 늘 한 번은 지금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박솔뫼는 을지로에서 교토로 부산으로, 동대문 흥인지문 공원으로 자유로이 옮겨가면서 김말봉이 지나왔고 겪었던 것들, 또는 실제로 겪지 않았으나 겪었을지도 모를 ‘가능성’들을 ‘지금’의 시간으로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불규칙하고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박솔뫼의 시선을 따라 김말봉이 살았던 시공간을 체험하면서 우리는 “여기 누군가 살았다는 것”과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임을 인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