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있고 흙이 있고 햇빛이 있고
바람이 있고 그리고 고요가 있었다”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소설가 노재희 첫 산문집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작가 노재희의 첫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이 출간되었다. 2013년 소설집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에서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며 각자만의 고독 속으로 침잠할 것을 제안했던 소설가 노재희. 그는 이번 산문집에서 정처 없으나 자유롭고 충만한 삶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노재희는 대학 졸업 후 두 번째 쓴 소설로 덜컥 등단에 ‘당첨’되어 버렸고, 국내 굴지의 광고 회사에 입사했지만 ‘잘하지 못하느니 차라리 안 하겠다’는 마음으로 출근 사흘째에 퇴사를 결심한다. 결혼 후에는 평균 2년에 한 번꼴로 이사(서울-성남-서울-용인-성남-용인-충남 금산-다시 용인 등)를 다녔다. 그리고 어느 해 여름, 인생의 변곡점이 된 결핵성 뇌수막염이라는 병명을 진단받는다.
큰 키 때문에 항상 맨 뒤쪽에 앉아 교실 전체를 조망했던 아이. 때문에 “어느 집단에 가도 아웃사이더가 될 재목”이었다는 그는 이제 자신이 걸어온 궤적들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조망하며, 삶과 기억, 죽음과 질병, 종교와 무신론의 문제, 글쓰기와 읽기 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뇌수막염 치료 과정에서 간단한 뺄셈조차 어려워 곤혹을 치른 기억이나 그동안 억눌러온 ‘부지런한 게으름뱅이’ 성향을 뒤늦게 발견한 일, 남편과 함께 일구어온 블루베리 농장과 수없이 옮겨 다닌 주거지와 나무들, 이삿짐 가운데 가장 큰 골칫덩어리인 수많은 책들 등.
행운이기도, 괴상한 일이기도, 마음의 준비도 없이 들이닥친 사건 사고이기도 했던 지난날. 저자는 그렇게 자신이 지나왔고, 또 지나오고 있는 시간들에 대해서 적어 내려간다. 그의 산문은 무색무취한 독백에 가깝고, 무덤덤해서 도리어 마음속 깊이 전달된다.
스스로 ‘문자공화국’의 시민이라고 밝힌 노재희는 궁금해서, 심심해서, 외로워서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누군가 쓴 것을 내가 읽고, 내가 쓴 것을 누군가 읽는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굉장한 일이라면서. 저자의 말처럼 궁금하고 심심하고 외롭기에 우리는 쓰고 읽으며, 또 그렇게 만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이처럼 정처 없지만 함께라서 외롭지만은 않은, 또한 정처 없기에 삶이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다는 고요한 긍정의 세계를 품고 있다.
출판사 서평
“집도 나도 그대로였지만,
세계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면서
진정한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재희는 서른세 살 여름에 결핵성 뇌수막염이라는 “죽을 뻔한 병”에 걸렸다. 치사율은 50퍼센트, 정확히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살아남더라도 대부분 예후가 좋지 않아 청각 장애, 시각 장애, 인지 장애 등이 남을 수 있었던 상황. 당시 저자는 40여 일을 병상에 누워 지냈고, 20여 일간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기억 회로 전체가 꼬인 듯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이후로 그의 인생은 아프기 전과 후로 나뉘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병원에 있던 40여 일간은 “아주 커다랗고 기괴한 징검다리”였다고. 그걸 딛고 다른 세계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새벽 평소보다 체온이 1.5도 높아져서 응급실에 갔을 뿐인데, 당시 모든 일상이 중단되었다는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뇌수막염으로 인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짧고도 긴 과정을 통해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탐색해간다.
내 기억은 새로 만들어졌다. 기억을 새로 심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일단 심으면 뿌리를 내리고 싹이 돋아나고 점차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된다.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기도 한다. _「기억의 나무」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기록하며
‘정처 없음’을 살아내는 삶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았다. 이게 내 인생일까? 그러곤 한참 후에 대답했다. 맞아. 이게 내 인생이지. 그는 말한다.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건과 사고들이 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고, 우리는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하지도 못한 채로 어떤 식으로든 살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이 된다.”
현재 노재희는 ‘정처 없음’을 살아내고 있다. 정처 없음의 삶 옆에 나란히 선 나무를 닮은 동반자 ‘여름씨’, 그리고 ‘진짜 나무’들과 함께. 여름씨와 함께 블루베리 나무를 키우며 살아가는 저자는 생각했다. 나무들을 땅에 심었으니 정처 없음의 삶도 좀 달라지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나무를 심는다고 정착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무들은 파서 옮겨 심으면 되는 거니까. 어디로 갈지, 또 어떻게 살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므로 그는 지금을 ‘나중’ 삼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정착할 때에 대비해 장만을 꺼렸던 것들, 즉 침대와 피아노, 수많은 책들을 다 이고 지고 다니며. “진짜 내 인생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것이기에.
내게 미래는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획할 수 있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나는 장차 무엇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거나 크게 무엇을 이루어보겠다는 꿈을 꾸어보지 못했다. 늘 사소한 일에 근심하고 소소한 일에 기뻐했다. 유일한 바람은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_「이게 내 인생일까」
궁금하고 심심하고 외롭기에
우리는 쓰고 읽으며
또 그렇게 만난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생이므로 오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지곤 한다”는 저자. 장차 무엇을 하겠다는 포부도 꿈도 없다. 내일 무엇을 할지, 다음 해에 무엇을 할지 생각할 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기록한다. 공원의 나무 아래 앉아 햇볕을 쬐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때때로 바람을 맞으며 걷기도 한다. 굳이 거창하게 무언가로부터 ‘은퇴’를 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작은 일상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비운 자리만큼 매일의 즐거움과 보람이 들어차는 충만한 삶. 저자는 오늘도 정처 없음의 여정 안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새 가지와 이파리를 무성하게 늘려가며 새로운 나무가 되어간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십수 년 된 낡은 자동차와 어린나무들뿐이고 그래서 우리는 나무를 싣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나도 있어! 거미가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와 거미와 함께 달려간다! _「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