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향해 ‘나쁜 놈아’ 외쳤더니
퉁퉁 불은 익사체가 발밑으로 밀려왔다!
로맨스 전문 고서점에서 피어나는 핑크빛 미스터리
일본 문단에서 본격 추리소설, 하드보일드, 호러, 패닉소설 등 다양한 작풍의 미스터리 소설을 발표해온 와카타케 나나미. ‘일상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유명한 그녀의 대표작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구간: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하자키葉崎라는 가상의 해안도시를 배경으로 한 코지 미스터리로, 낭만적인 바닷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수수께끼의 사건과 별난 캐릭터, 감칠맛 나는 전개가 어우러진 유쾌한 미스터리 삼부작이다.
지독하게도 운 나쁜 서른한 살 여자 아이자와 마코토. 다니던 편집 프로덕션은 도산, 기분전환 삼아 투숙한 호텔에선 대형 화재,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이 생겨 지인이 소개해준 카운슬러에게 상담을 받았더니, “당신의 등 뒤에 불에 타 문드러진 여자 모습이 보입니다”라며 신흥종교 입교를 강요한다. 도망치듯 가재도구를 몽땅 싣고 바닷가를 찾아 이놈 저놈 다 싸잡아 “나쁜 놈아!” 하고 외쳤는데, 바다는 보란 듯이 그녀의 눈앞에 퉁퉁 불어터진 익사체를 내놓는다!
사체의 신원이 하자키의 명문 마에다가의 실종된 도련님으로 추정되고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참고인인 마코토는 하자키를 떠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른 고색창연한 진달래 고서점. 로맨스소설 마니아인 주인 마에다 베니코와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높은 임금의 임시 점장 제의를 받고 얼떨결에 수락해버리는데, 첫날부터 도둑이 들고 다음 날에는 또다시 사체가 등장한다!
진달래 고서점과 커피숍 브라질, 중국음식점 후쿠후쿠 등이 늘어선 정겨운 상점가와 하자키 FM 라디오방송국, 마에다가의 대저택을 배경으로 독특한 인물들의 일상 속에서 사체의 미스터리, 부유하고 명망 높은 마에다가의 내분과 원한, 실종된 모자의 행방 등을 추적하는 잘 짜여진 이야기가 다양한 인물의 시점에서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와 로맨스 전문 고서점에서 피어나는 티격태격 로맨스까지 맛보게 해주는 근사한 코지 미스터리 소설이다.
지은이
와카타케 나나미 若竹七海
1963년 도쿄에서 태어나 릿쿄대학교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미스터리 클럽에 소속되어 ‘기치 미하루’라는 필명으로 소겐추리문고의 부록책자 『좀의 수첩』에서 「여대생은 수다쟁이」라는 신간소개 칼럼을 집필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5년 동안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1991년 연작단편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으로 데뷔했다. 이후 제38회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였던 『여름의 끝』(후에 『닫힌 여름』으로 제목 변경), 청춘 미스터리 『스크램블』, 자연재해 패닉소설 『화천풍신火天風神』, 역사 추리물 『넵튠의 만찬』, 불운한 명탐정이 등장하는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등을 발표하며 다채로운 작풍을 선보이고 있다. 2013년 「어두운 범람」으로 제66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단편 부문)을, 2017년 『조용한 무더위』로 SR 어워드와 팔콘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네 탓이야』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의뢰인은 죽었다』 『녹슨 도르래』 『이별의 수법』 『불온한 잠』 등이 있다.
1장 파도와 함께 나타나다
2장 고서점은 갑자기
3장 잊었어, 너의 옛 모습
4장 서로 속이기
5장 어느 도둑의 노래
6장 만날 땐 언제나 시체
7장 하오의 살인
8장 알리바이는 가득히
9장 함정에 빠져
10장 탐정들의 거리
11장 범인이여 안녕
옮긴이 후기
따져볼수록 뜯어볼수록 의심쩍은 그들의 일상!
일상과 미스터리를 넘나드는 롤러코스터 같은 소설
하자키 삼부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고마지 형사반장이 이번에도 수사를 지휘한다. 익사체가 지니고 있던 편지가 발견되면서 이 조그만 도시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편지의 수신인은 하자키의 여제女帝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하자키 FM 라디오방송국의 마에다 마치코 사장,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십이 년 전 고등학생 때 실종되었던 그녀의 조카 마에다 히데하루라고 적혀 있다. 검시 결과 사인은 익사로 판명되지만, 미량의 수면제가 검출된 것으로 미루어 자살로 볼 수도 있고, 물에 빠져 죽기에는 수심이 너무 얕은 데다 사망 추정시각이 밀물 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타살로 보이기도 한다. 또한 죽은 남자가 정말 히데하루인지도 의문스러운 상황. 웬일인지 자살로 마무리하고 넘어가려는 마치코 사장. 그리고 뭔가를 훔치려고 진달래 고서점에 숨어든 도둑, 이튿날 고서점에서 발견된 또 한 구의 사체가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시킨다.
불운 끝 또 불운 시작.
마코토에게 찾아온 로맨스, 그리고 사체?!
한편〈블루 나이트 하자키〉의 열혈 디제이 치아키, 악당 사무라이 같은 외모의 프로듀서 고이치로, 머릿속에 든 건 바다와 영화와 여자애밖에 없는 낙천주의 아르바이트 사원 유키야, 상점가의 마치코 사장의 딸인 멍한 미소녀 시노부, 악당 사무라이 같은 외모의 프로듀서 구도, 오징어같이 마른 사장 비서 후루카와 등 개성적인 캐릭터가 재미를 더하고, 얼떨결에 중화냄비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시체 대신 관 속에 들어가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마코토의 불운도 흥미롭다. 또한 상점가의 커피숍에서는 진한 커피 향과 고소한 빵 냄새가, 중국음식점에서는 고추기름과 만두의 풍미가 미스터리와 일상의 완급을 조절한다.
이토록 핑크빛인 미스터리라니!
로맨스소설 고서점에서 미스터리가 뭉게뭉게
한편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로맨스다. 진달래 고서점은 당장이라도 기울 것 같은 오래된 건물에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취급하는 책은 모두 로맨스소설뿐이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의 관계도, 마지막에 밝혀지는 비밀도, 모두 로맨스와 관련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도 걸작 로맨스영화를 패러디한 것이다. 1장 ‘파도와 함께 나타나다’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7장 ‘하오의 살인’은 〈하오의 연정〉, 8장 ‘알리바이는 가득히’는 〈태양은 가득히〉에서 모티브를 얻은 제목이다. 영화 원제와 일본어 번역 제목이 뉘앙스가 달라 유추하기가 쉽지 않지만, 4장 ‘서로 속이기’는 〈러브 어페어〉, 5장 ‘어느 도둑의 노래’는 일본에서 ‘어느 사랑의 노래’로 알려진 〈러브 스토리〉, 9장 ‘함정에 빠져’는 〈폴링 인 러브〉 등 모든 장 제목이 영화를 연상시킨다.
작품 속에서 로맨스 마니아인 마에다 베니코는 로맨스소설을 이렇게 정의한다. “우선, 남자와 여자의 애증을 그려야 한다, 라는 조건은 있지만 말이야. 기본은 지극히 단순해. 내가 로맨스라고 정한 것이 로맨스야.” 이처럼 로맨스소설과 로맨스영화로 양념된 이 소설을 제대로 즐기려면 곳곳에 숨겨진 인물들 간의 로맨스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