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가 건너는 강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필경 다 건너지 못할 인간과 문학의 강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들여다봅니다

  • 저자이윤기
  • 출간일2001-10-30
  • 페이지238
  • 가격8,500원
  • 판형153*224mm
  • ISBN978-89-7288-156-8
  • 분야에세이 > 한국에세이
책 소개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등단하여 전문번역가로 소설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윤기 선생이 월간 <에세이>를 비롯해 각종 일간지, 문예지에 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장미의 이름>, <변신 이야기>, <그리스 인 조르바> 등 200여 편을 번역했고 중편소설 <숨은 그림찾기>로 동인문학상을,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의 삶을 대변하듯 이 책은 크게 말과 글에 얽힌 이야기,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 신화와 문학에 관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부제 역시 내가 건너고 있으나, 필경 다 건너지 못할 강에 대한 글 37꼭지. 작가로서, 번역가로서, 신화전문가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느끼는 하나 하나의 단상들이 곰삭은 맛을 내면 펼쳐진다. 

저자 소개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 찾기 1'로 제29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번역 활동에도 힘을 기울여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변신 이야기'를 비롯, 2백여 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2000년 9월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교 국제대학 초빙연구원(종교사) 및 동 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객원교수(비교문학)를 지냈다. 2010년 8월 27일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장편소설 '하늘의 문', '햇빛과 달빛', '뿌리와 날개', '나무가 기도하는 집', '그리운 흔적', 소설집 '나비넥타이', '두물머리', 산문집 '이윤기가 건너는 강', '무지개와 프리즘', '어른의 학교',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 등 수많은 책을 집필하였다. 

차례

 

출판사 서평

이 산문집은 작가 이윤기가 건너는 인생의 강입니다. 그가 건너는 강에는 말과 글과 사람의 향기에서부터 신화와 문학의 향기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작가의 길을 걸은 사람이 품어내는 질박하고도 유머러스한 체취가 같이 흐릅니다. 그는 잘 익은 말을 찾아서 강을 건너는 사람입니다.


그는 뚬벙이를 생각하며 술의 강을 건너기도 하고 불량 인간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을 지켜보면서는 연애의 강을 건넜습니다. 신화에 천착하면서는 전설과 진실의 강을 건너고 있는 그는 그가 좋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필경 다 건너지 못할 인간과 문학의 강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다 건너지 못할 강은 인간이라는 강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저마다의 강을 건너는 이들에게 잠시 생각하는 강이 될 수 있도록 귀사의 보도협조를 의뢰드립니다.

속닥하게 술 한잔합시다
1부 말의 강, 글의 강 자청해서 우리말 지킴이를 하고 있는 작가의 우리 말살이 글살이에 대한 애정공세와 질책의 변이 담겨 있다. 젊은 날 실연당한 여자친구에게 유치한 말로 위로를 해서 낭패스러웠으나 도리어 그 유치한 언어표현이 결정적 진실을 전달해준 경험에서 작가는 단세포적 표현이 사람의 향기가 되는 사태를 훗날 작가로서 무섭게 느꼈다고 고백한다.

또한 작가는 열병식보다는 전투를 더 좋아하는 야전군인데 사람들은 이 야전군에게 전술학 강의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로서 번역가로서 잘 익은 말을 찾는 작업은 어디까지 모색되어야 하는지 글을 쓰고 번역하면서 겪은 경험들을 통해 조목조목 짚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어느새 전술학 강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1년여 전 저자가 즐겨 사용하던 지역어를 놓고 벌어진 논쟁에 대한 생각을 담은 <'속닥하게' 술 한잔합시다>의 '속닥하게 술 한잔'이 술친구들 사이에 정겨운 술 한잔의 상징이 되었음을 참 좋은 조짐이라고 여기는 저자는 그러나 청소년들의 인터넷 언어에는 관대하다. 사이버 공간으로 올라오는 그들의 글이 문법을 파괴하고 우리말을 해친다는 많은 어른들의 걱정은 기우라고 말한다.

문법은 모듬살이의 구성원들에게는 하나의 터부이므로 이 터부를 비틀어보는 것일 뿐이며, 인류학이 네오필리스트라고 부르는 청소년들의 범제 욕구와 컴퓨터가 요구하는 언어의 속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이버 공간은 그들만의 은밀한 문화의 강이므로.

나는 눈물을 믿는다
2부 풍속의 강, 세월의 강 '뚬벙이'라는 개에 얽힌 비극적 이야기로부터 경마장 가는 사람은 외로워 보인다는 과천 서울대공원과 경마장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얼굴 이야기, 큰 자동차의 씁쓸한 허장성세와 긴 약력에 어린 연줄에의 구질구질한 미련 등 인간과 삶의 강물에 부유하는 슬픔을 담고 있다. 인간이 신의 제단 앞에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의 물건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듯이 인간의 한 모듬살이가 섬기는 신은 그 인간들보다 더 영악할 수는 없다고 저자는 믿기에 기도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는 작가 이윤기.

조용필의 '또라와요, 부싼흐앙에 끄리운 내 히영제여....'를 들으며 연애를 시작했던 저자는 <패자부활, 혹은 '불량 인간'의 '위대한 탄생'>에서 조용필이 이루어낸 대중음악의 깊이를 바라보고 그를 거리낌없이 문화 영웅이라고 부른다.1976년, 지금은 내 아내이자 대학생 아들딸의 어머니가 되어 있는 한 처녀를 만나러 명륜동의 명륜다방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조용필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또라와요, 부싼흐앙에 끄리운 내 히영제여…

나는 이렇게 들었다. 매운 맛이 나면서도 떨림의 속살이 깊은 그의 음성을 처음 듣는 순간, 또 한 가인(歌人)의 시대가 열리는구나, 싶었다. 무지개를 본 듯했다. 그의 시대, 우리 부부의 시대는 그렇게 무지개 뜨듯이 열렸다. 나는 한 예술가와의 감동적인 만남의 순간을 기술하면서 이렇듯이 지극히 사적인 에피소드를 동원하고 있는데, 이럴 수밖에 없다.

문예 비평가가 아닌, 우리 같은 사람은 사적인 경험을 동원하지 않고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저 혼자 깊어진 강물 같은 남의 예술과 만 난 순간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조용필은 모든 창조적인 인간, 모든 '불량 인간'의 희망이다. 조용필은 '조용필과 그림자' 시대를 거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시대를 성취시킨 문화 영웅이다. 내가 그를 문화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기나긴 모색과 탐색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그의 음악이 이제 하나의 정형을 빚어 내었기 때문이다.

정치 영웅은 시대가 만들지만 문화 영웅은 시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만든다. 우리는 지금 '불량 인간' 조용필이 고통으로 빚어낸 시대를 살면서 그의 절대 고독이 고통스럽게 일군 시대를 향수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조용필이 더 고독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고독한 문화 영웅의 순교를 기다리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 본문 중에서 ―

아내의 자리, 여성들의 자리에 대한 속깊은 이해와 조국이라는 합의체도 때릴 수 있다고 발언하는 저자는 그러나 <무엇을 좇다가 전과자가 되었는데?>에서는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너 자신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묻고 있으며 북으로도 남으로도 가지 못하고 러시아를 떠도는 시인 리진의 시 <나무를 찍다가>를 읽고는 목이 메인다.

그리고 눈물을 믿는다고 말한다. 그는 난생 처음 한아름 거의 되는 나무를 찍어눕혔는데 그 줄기 가로타고 땀을 들이며 별 궁리 없이 송진 냄새 끈끈한 그루터기의 해돌이를 세었더니 공교롭게도 동갑이었다 한 나이였다.

(제 1연)눈물은 저자에게 독법이자 화법이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면>에서는 어머니 무덤이 있는 선산의, 다복솔에 덮인 작은 산등성이가 그리워 새벽 술 마시면서 식구들 몰래 눈물을 훔친다. 그에게는 그 작은 산등성이가 세계의 중심이며 슬픈 그리움의 원적이고 그가 건너는 끝없는 강인 것이다. 우리는 그 강을 고향이라고 부른다.

여러분 안에 있는 신화에 문안 드립니다
3부 신화의 강, 문학의 강 인간의 삶과 역사의 원형을 이루는 신화의 세계는 작가 이윤기에게 영원한 생명의 노래다. 그리스에서 교통사고 사망자들의 유족들이 도로변에 세웠다는 조그만 교회 이코노스타시온과 결국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 이야기는 경종같이 들린다.

죽은 아내를 찾아 지옥까지 갔으나 끝내 아내를 잃고 만 가인 오르페우스의 슬픈 아내 하마드뤼아스 에우뤼디케는 나무와 함께 하는 요정이며 바로 나무 자체였다는 나무의 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나무를 그냥 나무로 보게 하지 않는다. 저자는 대나무를 베어내는 스님들에게 이렇게 묻는다.'아세요, 나무가 기도한다는 거?' '이런데도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 안에 있는 신화에 문안 드립니다"는 저자가 신화이야기를 시작할 때 하는 말이다. 신화는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강이다. 중생 앞에 서른세 가지의, 이름도 다르게, 역할도 다르게 응신하는 관음보살이나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술의 전당이 기획한 '신화 그 영원한 생명의 노래'전에 나온 우리 신화의 이미지에서 저자는 우리 조상들의 모듬살이가 꾸었던 꿈의 화석화한 내역을 보았다.

우리는 너무 늦게, 우리 조상들이 우리 이름으로 언표한 진리를, 우리 조상의 꿈과 진실을 만나게 된다. 그 꿈과 진실이 다른 민족의 꿈과 진실과, 모습이 다를 뿐, 사실은 하나라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우리 안을 흐르던,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없던 강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나온 통로였으되, 한번도 우리가 들여다 본 적이 없는 내 어머니의 자궁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신화는 우리의 자궁이자 문명의 자궁이다.
― 본문 중에서 ―
고대의 암각화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봉헌부조를, 남근석과 여근석에서 고대 인도의 링감과 요니를 본 저자는 척사를 위한 귀면와는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의 머리,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조 삼족오는 그리스 태양신 아폴론의 시조인 까마귀와 다름 아니라고 통찰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사랑하고 그가 쓴 불후의 명작『그리스인 조르바』와『미칼레스 대장』의 번역자인 저자는 1999년 2월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흔적을 보고 돌아온다. 자연인이며 자유인의 상징인 그리스 인 조르바는 예순다섯 살이나 먹은 딸을 남겨놓고 있었고 카잔차키스는 다음과 같은 비명을 남겨 놓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이 묘비명은 모든 작가가 궁극적으로 뿜어내야 할 창작의 힘을 담고 있다. <지금의 작가는 옛날의 작가와 똑같지요>에서 저자는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숨은 그림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림을 숨기는 사람이 아닐까. 수수께께를 푸는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가 아닐까.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푸는 순간, 스핑크스는 주두 아래로 투신, 깨끗이 자살한다. 오이디푸스는 추접하게 살다가 결국 제 눈을 후벼파는 최후를 맞는다. 프랑스 파리 시청 지붕의 용마루를 위요하고 있는 것은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수수께끼를 낸 스핑크스였다. 소름이 다 돋았다." 작가는 야전군인이니 마땅히 전방에 있어야 한다는 작가 이윤기는 그래서 지금의 작가나 옛날의 작가는 똑같다고 끝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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