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들 부소의 눈으로 바라본 진시황!
장정일이 새롭게 그려낸 진시황 이야기 『중국에서 온 편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전하는 문학의 향기를 담은 「소설향」 시리즈의 하나로, 새로운 편집과 판형으로 선보이는 개정판이다.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의 시선으로 진시황을 이야기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권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작가는 실제와 허구,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글 솜씨로 권력의 속성을 향한 야유와 조롱을 풀어놓는다.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해 진시황과 진 제국에 관한 여러 기록을 참조하고 정리하여 '장정일 버전'의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저자 소개
저자 장정일은 1962년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시 「강정 간다」 외 4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1987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실내극」이 당선되었다.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칸」을 발표하면서 소설로 작품 활동 영역을 넓히며 전방위 작가로 왕성한 필력을 선보였다.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 『길안에서의 택시잡기』, 창작집 『아담이 눈뜰 때』, 장편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보트하우스』 『구월의 이틀』, 희곡집 『긴 여행』 『고르비 전당포』, 그 외에 『장정일으 독서일기 1~7』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과 『장정일의 공부』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한국의 대표 작가들로 시작된 소설향 시리즈
출간될 때마다 많은 독자들과 언론매체로부터 관심을 받아왔던 소설향 시리즈가 윤대녕 작가의 『장미 창』 개정판을 필두로 새롭게 선보인다. 소설향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출판 활로를 모색하고, 작가들에게 다양한 지면을 제공하며, 아울러 독자들에게 좀 더 폭넓은 작품 선택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1997년 중편소설 시리즈로 시작되었다. 이 시리즈의 이름인 ‘소설향’은 소설의 향기와 소설의 고향을 아우르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동참한 작가들만 해도 이윤기, 김채원, 이순원, 윤대녕, 배수아, 조경란을 비롯해 최윤, 성석제, 신이현, 장정일, 정영문, 이제하, 서정인, 함정임, 이응준, 김종광, 이청해, 김연수, 백민석, 이명랑, 박청호, 송혜근, 이승우까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 23명에 이른다.
소설향을 재개하며
23번째 작품인 이승우 작가의 『욕조가 놓인 방』을 끝으로 소설향 시리즈는 4년간의 공백기를 거치며 작가와 평론가군의 재선정, 원고지 500매에 이르는 분량과 책의 제작 사양 및 표지 콘셉트의 변화 등 시리즈 전반에 관해 다각적인 모색을 꾀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게 된 개정판 소설향 시리즈는 달라진 출판 시장의 흐름에 맞춰 가독성을 높인 편집과 판형, 시리즈의 통일성을 기하면서도 각 작품이 지니고 있는 색깔을 표현한 새로운 표지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한 제본에 있어서도 기존의 무선제본에서 탈피해 가벼우면서도 소장 가치를 높인 양장제본으로 전환하였다.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의 입을 빌려
장정일이 새롭게 그려내는 진시황 이야기!
장정일 작가의 『중국에서 온 편지』는 억울하게 죽은 진시황의 장남 부소의 입을 통해 새롭게 그려지는 ‘장정일 버전’의 진시황 이야기이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전복적인 글쓰기로 수많은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가 장정일이 이번에는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를 빌어 실제와 허구,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권력의 속성을 향한 야유와 조롱을 담은 파격적이고 자유분방한 특유의 글 솜씨를 유감없이 구사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진시황을 비롯해 부소, 몽염 장군, 승상 이사, 여불위, 환관 조고 등 모두 역사 속 실존인물들이다. 작가 스스로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작가는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해 진시황과 진 제국에 관한 여러 책들의 기록을 참조하고 이 수많은 기록들을 잘 정리한 후 여기에 장정일만의 새로운 말들을 첨가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이다. 작가는 부소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하고 있다. “들어보십시오. 나는 부소扶蘇입니다. 나는 부소이자, 나는 부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가면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부소는 어떤 인물인가? 부소는 40여 명이나 되는 진시황의 자식들 가운데 첫 번째 공자로, 곧 장남이다. 다르게 말하면 태자로서 진시황의 뒤를 이어 진 제국의 이세황제二世皇帝가 될 몸이었다. 그러나 이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기』에서 부소가 언급되는 곳은 단 두 군데뿐이다. 아버지 진시황이 유생 460명을 생매장했을 때 유생들을 옹호하다가 아버지로부터 유배 아닌 유배형을 선고받고 북쪽 변방으로 쫓겨 갔다는 대목과, 진시황이 죽은 후 환관 조고와 승상 이사, 그리고 막내 동생 호해가 짜고 보낸 진시황의 가짜 유서를 받고 자결했다는 대목뿐이다.
이에 부소는 “숱한 공자들 가운데서 가장 무용이 뛰어났고 어질었으며 아버지께 직언할 줄 아는 용기를 가졌던 내가 그렇게 빈약한 기술로 처리될 수는 없습니다. 들어보십시오”라고 말하며, 사마천이 『사기』에 쓰지 못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부소가 아버지로부터 유배 아닌 유배형을 선고받았을 때 눈이 멀었다는 것이나, 사마천이 궁형을 자청해 사형을 면했듯이 부소는 아버지의 가짜 유서를 받고 자결하는 대신 스스로 두 눈을 파내 죽지 않았지만 후에 조고가 보낸 자객에게 죽음을 당했다거나, 몽염 장군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실제의 역사적 인물들의 입을 통한 기술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허구임에도 실제로 이러한 사건들이 있었다고 믿게 만드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대장군이 되고프냐? 대장군을 시켜주마!
승상이 되고프냐? 승상을 시켜주마!
황제가 되고프냐? 황제를 시켜주마!
이 소설은 역사를 소재로 하고는 있지만 기존의 역사소설과는 다르다. 시간적인 배경이 되는 그 시대에 얽매이지 않고 고금古今을 넘나들며 묘사와 서술이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의 단락 구분도 없이 죽 이어지는 것도 특징이다. 이를 통해 마치 고서古書를 보는 듯한 효과를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서술어미는 현대적인 것을 사용하고 있다. ‘~지요, ~고요, ~군요, ~랍니다’ 등등. 그리고 기존의 장정일 소설에 비해서 덜하기는 하지만 육두문자나 은어 등이 서술과 묘사에 공공연하게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면, ‘스키, 새꺄, 좆대가리, 오케바리, 데끼리, 독구다이 원맨 플레이, 오도꾸’ 등이 그런 말들이다.
아들 부소의 시선에서 진시황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진시황과 부소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진시황과 부소는 평범한 부자지간이 아니다. 진시황에게 부소는 아들이기 이전에 자신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경쟁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진짜 아버지인 여불위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영원불멸의 시황제를 꿈꾸는 그에게는 아들 역시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거세되어야 할 존재이자 “아버지가 손쉬운 희생양으로 쓰기 위해 간직해둔 히든 카드”였던 것이다.
나는 황제 폐하로부터,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함양으로부터 다시 말해 장성의 안쪽 세계로부터 철저히 거세당한 겁니다. 내가 거세된 까닭은 함양의 선남선녀들이 닳도록 입방아를 찧으신 것처럼 여러 차례 직언으로 아버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몸이 장자라는 것, 언젠가는 태자가 되고 아버님을 대신해 이세황제가 되리라는 것, 그 때문입니다.
부소는 이처럼 아버지 진시황을,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날 밤 나는 장군의 크고 뜨거운 해를 입으로 삼켰습니다. 그리고 뜸을 들이며 아주 조심스레 내 달 속으로 장군의 태양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나는 울었었군요. 나는 내 몸 속을 밀고 들어온 장군이 나의 아버지였으면 했던 겁니다.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던 거지요.
“황제 폐하로부터,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함양으로부터 다시 말해 장성의 안쪽 세계로부터 철저히 거세당한” 부소와 몽염 장군은 “변방의 소외된 동지”에서 “변방의 연인”이 된다. 아들 부소를 북쪽 변방으로 내친 진시황과는 달리, 적진에 혼자 낙오되어 있는 부소를 구하러 온 몽염. 그래서 부소는 자결하라는 아버지의 가짜 유서를 받았을 때 죽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결코 죽을 수 없었습니다. 역사에 남을 아버님의 치욕? 황제로서의 위신? 그따위 똥 같은 건 개나 물어가라지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 몽염을 두고는 차마 세상을 하직할 수 없어요. 새로 생긴 아버지 몽염을 두고서는 어디로도 갈 수 없어요”라고 부소는 말한다. 부소와 몽염은 연인 사이이면서도 부자지간이었던 것이다. 과연 부소와 몽염은 희대의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이자 역사적인 희생양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대세를 거스른 탓에 죽어야만 했던 인물들이었을까. 판단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감각, 관념, 그리고 이야기
중국에서 온 편지의 중심인물은 부소가 아니라 진시황이라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장정일은 부소를 택하는 순간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장정일은 은근슬쩍 그런 분위기를 피워―진시황과 부소의 갈등, 부소와 몽염의 사랑을 통해―정신분석학에 심취한 비평가들을 살짝 긴장시켰다가 비웃어버린다. 그렇다면 왜 부소인가?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장정일은 거대한 통일국가를 ‘군말 없이’ 감당한 진시황과 자기 자신의 욕망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떠벌리는’ 부소를 대비시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삶을 능히 감당하는 자는 말이 없고, 그 삶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쉴 새 없이 지껄여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가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_김탁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