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빛 저편에 어둠처럼 드리워진 우리들의 슬픈 운명!
가면을 쓴 채 만남과 엇갈림을 반복하는 우리 삶의 외로운 풍경을 그린 윤대녕의 중편소설 『장미 창』.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전하는 문학의 향기를 담은 「소설향」 시리즈의 하나로, 초판과 재판을 거치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작품의 개정판이다.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로 평가받아온 윤대녕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짧은 만남을 가졌던 여자 정윤이 보낸 한 통의 편지로 인해 주인공인 '나'가 프랑스까지 찾아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정윤을 만나러 간 '나' 앞에 그녀 대신 동생이라는 정희가 등장하고, 정희와 석연치 않은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데…. 진지한 주제 의식과 정제된 시적 문체 등 작가 특유의 문학세계를 만날 수 있다.
저자 소개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단국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0년대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이후 창작집 『은어낚시통신』 『대설주의보』 『남쪽 계단을 보라』 『누가 걸어간다』 『제비를 기르다』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등을 펴냈으며, 장편소설로는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달의 지평선』 『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눈의 여행자』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등이 있다. 1994년 제2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6년 제20회 이상문학상, 1998년 제43회 현대문학상, 2003년 제4회 이효석문학상, 2007년 제1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출판사 서평
한국의 대표 작가들로 시작된 소설향 시리즈
출간될 때마다 많은 독자들과 언론매체로부터 관심을 받아왔던 소설향 시리즈가 윤대녕 작가의 『장미 창』 개정판을 필두로 새롭게 선보인다. 소설향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출판 활로를 모색하고, 작가들에게 다양한 지면을 제공하며, 아울러 독자들에게 좀 더 폭넓은 작품 선택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1997년 중편소설 시리즈로 시작되었다. 이 시리즈의 이름인 ‘소설향’은 소설의 향기와 소설의 고향을 아우르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동참한 작가들만 해도 이윤기, 김채원, 이순원, 윤대녕, 배수아, 조경란을 비롯해 최윤, 성석제, 신이현, 장정일, 정영문, 이제하, 서정인, 함정임, 이응준, 김종광, 이청해, 김연수, 백민석, 이명랑, 박청호, 송혜근, 이승우까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 23명에 이른다.
소설향을 재개하며
23번째 작품인 이승우 작가의 『욕조가 놓인 방』을 끝으로 소설향 시리즈는 4년간의 공백기를 거치며 작가와 평론가군의 재선정, 원고지 500매에 이르는 분량과 책의 제작 사양 및 표지 콘셉트의 변화 등 시리즈 전반에 관해 다각적인 모색을 꾀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게 된 개정판 소설향 시리즈는 달라진 출판 시장의 흐름에 맞춰 가독성을 높인 편집과 판형, 시리즈의 통일성을 기하면서도 각 작품이 지니고 있는 색깔을 표현한 새로운 표지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한 제본에 있어서도 기존의 무선제본에서 탈피해 가벼우면서도 소장 가치를 높인 양장제본으로 전환하였다.
개정판 소설향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출간되는 윤대녕 작가의 『장미 창』은 초판과 재판을 거치며 오랫동안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작품이다. 그동안 한국문단으로부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로 평가받아온 윤대녕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담긴 중편소설로, 진지한 주제 의식과 고도로 정제된 시적 문체 등 작가 특유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는 이 작품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가면을 쓴 채 만남과 엇갈림을 반복하는 우리네 삶의 외로운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장미창, 신촌의 술집에서 베네치아로 이어지는 쓸쓸한 추적
이 소설은 찰나 같은 짧은 만남을 가졌던 여주인공 정윤이 보낸 한 통의 편지로 인해 주인공인 ‘내’가 프랑스까지 찾아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가면’과 ‘진실’ 찾기와 관계된 이야기이다. 정윤을 만나러 유럽까지 가게 된 주인공 앞에 정윤 대신 그녀의 동생, 정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정희는 언니 정윤이 일을 보는 동안 대신 자신이 주인공을 안내시켜주기로 했다며 접근한다. 주인공인 나는 짧은 만남으로 인해 정윤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상태로 정희를 만나 석연치 않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나에게 검은 선글라스를 쓴, 이름 모를 여인이 계속해서 주변을 맴도는 등, 알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정희와 함께한 시간을 뒤로 하고 나는 결국 정윤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던 베네치아로 떠나게 되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사실 정윤과 정희는 동일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정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있다. 주인공인 나 역시 얼핏 정희의 존재를 눈치채지만 정윤이 그 사실을 밝힐 때까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검은 선글라스를 쓴 여인 역시 주인공 앞에서 선글라스 벗기를 거부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와 정윤이 만나기로 한 베네치아가 ‘가면의 도시’로 불린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가면을 벗는 순간은 딱 한 번, 신촌의 술집 화장실에서 본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함께 있었을 때뿐이다.
거머쥐고 싶었던 생生의 한순간에 바치는 헌사
『장미 창』은 생의 “외롭고 고단한 침묵”에 아파하는 자가 희구하는 “되찾고 싶은 생의 한순간”이 베네치아라는 퇴락의 도시와 어울리며 쓸쓸한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 ‘한순간’마저 유예시키는 침묵을 한 자락씩 말로 옮기고 있는 그를 사랑하고 쫓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장미 창』에 나타난 돌발적이면서도 쓸쓸한 추적의 여정은 지난 시절의 꿈을 상실한 90년대적 일상과 90년대적 인물의 문학적 상상으로 볼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장미 창의 휘황한 빛 저편에 어둠처럼 드리워져 있는 우리들의 슬픈 운명은 서울이든, 파리든, 밀라노 혹은 베네치아든 어느 곳에서나 반복된다. 그리고 삶은 오래 지속된다. _박철화(소설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