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서 있던 90학번들의 자화상!
90년대 초반의 기억을 들추어내는 김종광의 소설 『71년생 다인이』.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전하는 문학의 향기를 담은 「소설향」 시리즈의 하나로, 새로운 편집과 판형으로 선보이는 개정판이다. 71년생 명랑소녀 양다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서 좌충우돌했던 젊은이들의 모습과, 당시의 시대상 및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양다인은 90학번들이 헤쳐 나온 시대적 운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작가는 절제되지 못한 주관적 감상 대신, 그 시대의 감수성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성찰하는 새로운 후일담을 들려준다. 작가 특유의 능청과 넉살,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개성적인 문체가 돋보인다.
저자 소개
저자 김종광은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에 단편 「경찰서여, 안녕」,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해로가」가 당선되었다.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으로서 한국 현대소설의 빈약한 서사성을 회복시켜줄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소설집으로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낙서문학사』 『처음의 아해들』, 청소년소설로 『야살쟁이록』 『처음 연애』 『착한 대화』, 장편소설로 『율려낙원국』 『군대 이야기』 『첫경험』 등이 있다. 2001년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
출판사 서평
한국의 대표 작가들로 시작된 소설향 시리즈
출간될 때마다 많은 독자들과 언론매체로부터 관심을 받아왔던 소설향 시리즈가 윤대녕 작가의 『장미 창』 개정판을 필두로 새롭게 선보인다. 소설향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출판 활로를 모색하고, 작가들에게 다양한 지면을 제공하며, 아울러 독자들에게 좀 더 폭넓은 작품 선택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1997년 중편소설 시리즈로 시작되었다. 이 시리즈의 이름인 ‘소설향’은 소설의 향기와 소설의 고향을 아우르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동참한 작가들만 해도 이윤기, 김채원, 이순원, 윤대녕, 배수아, 조경란을 비롯해 최윤, 성석제, 신이현, 장정일, 정영문, 이제하, 서정인, 함정임, 이응준, 김종광, 이청해, 김연수, 백민석, 이명랑, 박청호, 송혜근, 이승우까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중견작가 23명에 이른다.
소설향을 재개하며
23번째 작품인 이승우 작가의 『욕조가 놓인 방』을 끝으로 소설향 시리즈는 4년간의 공백기를 거치며 작가와 평론가군의 재선정, 원고지 500매에 이르는 분량과 책의 제작 사양 및 표지 콘셉트의 변화 등 시리즈 전반에 관해 다각적인 모색을 꾀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게 된 개정판 소설향 시리즈는 달라진 출판 시장의 흐름에 맞춰 가독성을 높인 편집과 판형, 시리즈의 통일성을 기하면서도 각 작품이 지니고 있는 색깔을 표현한 새로운 표지 디자인이 특징이다. 또한 제본에 있어서도 기존의 무선제본에서 탈피해 가벼우면서도 소장 가치를 높인 양장제본으로 전환하였다.
첫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으로 과도한 내면 탐구에 경도되어 있던 문단에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제시한 김종광 작가의 작품으로 변혁의 80년대와 환멸의 90년대의 틈바구니에서 좌충우돌했던 젊은이들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세밀히 묘사해내고 있다. 자칫 전형적인 후일담 소설로 빠질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김종광 작가는 ‘명랑소녀’ 양다인이라는 문제적 주인공을 통해 그 시대의 감수성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성찰하는 새롭고도 매력적인 후일담을 들려준다. 또한 작가 특유의 능청과 넉살, 해학과 풍자가 넘쳐흐르는 그 특유의 개성적인 문체는 이 작품에서 더더욱 농익은 멋과 맛을 선사하고 있다.
지리멸렬 감상 과잉의 후일담 소설을 훌쩍 뛰어넘는
김종광표 유머의 무차별 페퍼포그
『71년생 다인이』는 ‘제2의 이문구’로 불리며 그 탁월한 서사력과 개성적 문체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 김종광의 첫 경장편소설이다. 그동안 일관되게 소외된 주변부 사람들의 삶을 그려온 작가의 이력을 생각할 때, 이번 소설은 주제나 스타일 면에서 매우 특이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71년생 양다인이라는 캐릭터의 인생행로를 통해 이 시대가 처한 곤혹스러운 현실을 정공법으로 돌파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양다인은 1971년생 90학번(작가 역시 71년생 90학번이다)들이 헤쳐 나온 시대적 운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왜 하필 71년생 90학번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변혁의 80년대를 상징하는 386세대와 환멸의 90년대를 상징하는 신세대 사이에서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혼돈스러운 이십 대를 보내야 했던 세대이다. 전교조세대, 한총련세대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 어떤 정의로도 명확히 수렴되지 않는 그들은, 거대담론의 소멸과 함께 급속한 개인주의화의 길을 걸어온 우리 사회의 풍경을 극단적으로 체험한 문제적 세대인 것이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대폭 투영되어 있는 『71년생 다인이』는, 그러나 지리멸렬한 사건 전개에 절제되지 못한 주관적 감상의 과잉으로 오히려 환멸만을 증폭시켰던 90년대 후일담소설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경쾌한 입담 속에 담긴 ‘명랑소녀 패배기’의 아이러니
작가는 주인공을 화자로 내세워 시시콜콜히 진술하게 하는 대신, 여섯 명의 관찰자를 통해 다인이의 청춘 시절을 간접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1인칭 화법이 갖는 과도한 주관성의 위험을 피하게 해주며, 더욱 생동감 넘치고 다면적인 현실을 창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노림수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관찰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다인이는 천부적인 운동권 학생이다. 전교조 세대로서 고등학교 때부터 독서회를 조직하고 전교조 지지시위를 주동한, 떡잎부터 ‘빨간’ 아이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분신자살을 기도하고 감옥살이를 하는가 하면, 졸업한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돈벌이에는 관심 없이 시민운동 관련 ‘짓거리’를 멈추지 않는다.
비극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나간 영웅적인 운동권 학생? 그러나 우리는 곧 관찰자들의 객관을 가장한 진술 속에 숨겨진 다인이의 또 다른 진실을 알게 된다. 다인이를 짝사랑한 까닭에 본의 아니게 줄곧 투쟁의 대열에 함께했던 대학 친구는 말한다. “다인이는 우리들의 영웅이 아니었다. 다인이는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외로운 애라는 게 진실에 가까웠다.” 즉, 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심하게 말해 시대착오적인 열정에 청춘을 소모한 패배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시민운동도 하고 돈도 버는 획기적인 벤처를 차렸다가 쫄딱 망한 후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어가는 71년생 다인이의 모습은 386세대의 복사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386세대와 달리 다인이 세대는 “유토피아가 점점 물러가는 자리의 끝에서 사라지는 유토피아를 붙잡으려고 한 세대”라는 점에서 한층 큰 자의식 파열의 경험을 갖게 된다. 기껏해야 “80년대 선배 학번들로부터는 학생운동을 흉내 내는 후배 정도로,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세월이 좋아졌는데 괜히 데모나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급격히 망각되어간 ‘한총련’의 존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71년생 다인이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시대적 곤혹’을 상징한다. 그것은 민족 자주화, 사회 민주화, 통일 등 우리가 급격한 포스트모던의 물결에 휩쓸려 정신없이 망각해버린, 그럼에도 언제나 의식 한 편에 찜찜하게 남아 유령처럼 짓누르는 거대 담론의 자취들이다.
시시때때로 실소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경쾌하고 재기발랄한 입담 속에서 71년생 다인이의 ‘명랑소녀 패배기’가 더더욱 오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단의 시류에 관계없이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가고 있는 김종광표 유머가 도달한 또 다른 경지이다.
“운동은 어떻게 된 거니?”
“늘 열심히 하고 있어요. 보세요. 하나, 둘, 셋, 넷!”
『71년생 다인이』는 우리들의 망각의 늪 속에 매몰된 90년대 초반의 기억을 조심스레 들추어낸다. 작가는 우리들의 불명료한 기억을 소생시키기 위해 한 명의 명란 소녀를 독자들에게 파견한다. 만남의 대상은 71년생 양다인이다. 독자들은 이 건강하고 당찬 그리고 예쁘장하게 생긴 명란 소녀 71년생 양다인을 만나면서 80년대와 90년대의 교차선에 위태롭게 서서 이십 대의 시간을 소진한 90학번들의 자화상과 그들에게 있었던 우울한 과거를 파악하게 된다. 김종광은 현명한 작가다. 감상성의 유혹에서 김종광의 소설은 멀리 비켜서 있다. 이 점이야말로 김종광 소설의 장점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신파의 어법이 아닌 김종광적인 어법으로 김종광표 후일담 소설 한 편을 만들어내고 있다. _양진오(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