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엠마뉘엘 베르네임Emmanu?le Bernheim
저자 엠마뉘엘 베르네임Emmanu?le Bernheim은 1955년 12월 13일 파리에서 태어나 일어학을 전공했고, 《영화 평론》지에서 사 년간 사진자료실 책임자로 근무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드라마 대본 심사위원이며, 2010년부터 메디치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프랑수와 오종 감독의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베르네임은 이십 년 동안 백 쪽 남짓한 소설 다섯 편을 발표했다. 1985년 발표한 첫 작품 『잭나이프』로 이미 화제가 된 그녀는 『커플』(1987년), 『그의 여자』(1993년), 『금요일 저녁』(1998년)을 내놓았다. 특히 ‘새롭고 독특한 문체’로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메디치상을 수상한 『그의 여자』에서 감각적인 소설가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스탤론』(2002년) 이후 거의 십 년이라는 오랜 공백을 깨고 발표한 신작 『다 잘된 거야』(2013년)는 자전적 소설로 아버지의 안락사라는 묵직한 주제를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출판사 서평
“너무 간결하고, 너무 건조하고, 너무 강렬하다!”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위태로운 병적 증세들로 빚어낸
금기에 대한 욕망과 욕망 너머의 세계
“아주 세심하게, 때로는 얼음같이 차갑게 외과적 정확성을 지닌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의 여자』는 여성의 은밀한 욕망과 괴벽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은 가장 실험적인 작품에 수여하는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했고, 출간 당시 10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전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되었을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여자』는 남몰래 하는 사랑의 내밀한 쾌락, 타인의 소지품을 수집하여 희멸에 빠져드는 ‘페티시스트(fetishist)’의 쾌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피처럼 진하며, 사막처럼 건조한 문장은 불완전한 소유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한 여자의 상처 입은 가슴을 해부하듯 파헤친다. 우리는 『그의 여자』를 통해 사랑과 욕망이라는 문제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성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몇 시에 도착하든지 간에 그는 그녀의 집에서
한 시간 십오 분을 머물렀다.”
칼날처럼 날카롭고, 사막처럼 건조한 문체로 그려낸
여성의 은밀한 욕망에 대한 정교하고도 우아한 오마주
서른네 살의 내과의사 클레르는 어느 날 핸드백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다음 날 낯선 남자가 핸드백을 들고 찾아와 그녀의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코바크. 그녀는 남자에게 강하게 이끌린다. 토마스는 병원 옆 건설 현장의 건축업자이자 유부남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는 늘 가죽점퍼를 입고, 커피에는 세 개의 각설탕을 넣으며, 매일 저녁 정확히 1시간 15분을 그녀의 집에 머무르다가 떠난다.
클레르는 그가 시간을 알 수 없도록 비디오와 커피메이커 등 전자제품들의 플러그를 뽑아놓고, 침대 탁자 위의 자명종 시계를 치워놓고, 손목시계를 빼버리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언제나 메트로놈처럼 늘 정확하게 1시간 15분을 머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처음으로 한 시간 반을 머문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녀는 칵테일을 저었던 노란 플라스틱 막대, 왕관이 찍힌 각설탕, 샴페인 코르크 마개, 전화 응답기 테이프, 열두 송이의 마른 장미, 콘돔 봉지 등 그와의 만남을 기념하는 물건들을 서랍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남자에 대한 갈망을 채운다. 그녀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만큼이나, 혼자 있는 시간 동안에도 수집하는 행위를 통해 성적 만족을 얻는 페티시즘(fetishism)의 쾌락을 즐긴다.
그리고 충격적인 그의 고백. 그는 자신이 결혼하지도 않았고, 아이도 없다고 고백한다. 이제 그는 클레르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걸까? 그러나 베르네임은 우리가 두 사람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리라고 예상하는 시점이 바로 모든 것이 끝나는 지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클레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여자가 아니라는 것과 이 소설 역시 지금까지 읽었다고 생각한 그 소설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녀는 토마스의 고백을 받고는 그동안 서랍 안에 모아둔 물건들을 모두 버린다. 대신 그 자리에는 그녀의 새로운 환자인 코레이 씨가 떨어뜨리고 간 성냥갑을 넣는다. 마치 미련도, 후회도 없는 이 탈선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듯이. 클레르는 성적 상징물에 대한 집착을 통해 진정한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기꺼이 고립 속에 빠뜨린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사랑을 열망하지만, 사랑과 욕망은 충족이 아니라 결핍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그와의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유의 불완전성 때문이었던 것이다.
베르네임은 『그의 여자』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을 극도로 절제된 문장과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소설은 토막토막 끊어지는 듯한 단문, 감각적 문체, 속도감 있는 전개, 장황한 설명보다는 인물의 행동이나 몸짓을 통해 내면 심리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특히 소설 속 장면들은 시나리오 시퀀스(sequence)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이 영화적 기법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감정이입을 효과적으로 유도한다. 작가의 주관적 설명이 배제된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시선은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엿보는 듯한 관음증적 욕망을 자극한다. 이러한 금기에 대한 욕망은 소설 속 여성이 지닌 욕망이자, 소설 자체가 지닌 욕망이기도 하다.
베르네임의 작품에서는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해 고통을 받는 여성들도, 욕망을 실현해 혹독한 대가를 치른 여성들도 없다. 오직 그녀들은 사랑은 관능적 욕망 그 자체라는 명제를 충실히 재현할 뿐이다. 여성의 육체는 남성의 시선에 의해 대상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섹슈얼리티를 가진다.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그의 여자』에서 여성의 존재 방식과 욕망의 본질을 새롭고 독창적으로 그려내면서, ‘여성적 글쓰기’의 또 다른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 작가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100페이지’의 미학
“곤두선 신경처럼 날카롭고 압축된 문체”, “자극적이고 아이러니컬한 차가움으로 탈선의 현기증을 묘사하는 작가”, “모든 사랑의 테마를 전율시키는 글쓰기”, “면도날로 자른 것 같은 분명함과 죄어오는 폭력적 압박감”, “하루 동안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마시는 아주 진한 커피 같은 소설…….” 프랑스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에게 수여되는 메디치상을 수상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소설에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특이한 방식으로 현대 여성의 ‘괴벽’을 그리고 있는 베르네임은 20년 동안 100쪽 남짓한 짧은 소설 다섯 편(『잭나이프』,『커플』, 『그의 여자』, 『금요일 저녁』, 『스탤론』)을 발표하면서 ‘100페이지의 작가’로도 불린다. 특히 첫 작품 『잭나이프』는 출간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너무 짧고, 너무 간결하고, 너무나 건조한 문투의 독특한 작품 세계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993년 ‘새롭고 독특한 문체’로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메디치 문학상’의 심사위원회는 베르네임의 세 번째 소설인 『그의 여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이 소설은 곧바로 1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13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그의 후속작인 『금요일 저녁』 역시 출간과 동시에 문단과 독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작가정신에서 프랑스 문학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작품 세계의 정수를 느낄 수 있도록 초기부터 최근작까지를 선보이고자 한다. 이번에 소개되는 네 편의 작품은 『잭나이프』, 『커플』, 『그의 여자』, 『금요일 저녁』이다. 작가의 가장 최근작인 장편소설 『다 잘된 거야』는 2015년 2월에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