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무지막지한 시대를 살아가는 초라한 인간들의 이야기!

  • 저자김정남
  • 출간일2013-12-05
  • 페이지248
  • 가격12,800원
  • 판형127*187mm
  • ISBN978-89-7288-518-4
  • 분야소설 > 한국문학
책 소개

무지막지한 시대를 살아가는 초라한 인간들의 이야기!

김정남의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 자폐아 아들과 함께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보통의 소설이 금기로 삼는 우연과 극단적 설정을 전면화해 사회나 현실보다 주인공 승호에게 주목하도록 만들며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다. 여행이란 형식을 빌려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비극적 방식을 보여주는 승호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술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아들 겸이를 데리고 7번 국도를 따라가는 여행길에 오른 승호는 다시 찾은 속초에서 지난 과거를 떠올린다. 전쟁이 일어난 후 삼팔선을 넘어 속초에 정착해 승호와 누나를 낳은 아버지는 내연녀의 남편의 칼에 맞아 죽고, 속초를 떠나 강릉에서 포목점을 차린 엄마는 중앙시장에 큰불이 나며 세상을 떠난다. 한편 유아기의 열성경련으로 간질을 앓고 있으며 지능이 모자라는 자폐아 아들 겸이를 두고 아내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혼자 직장을 다니며 겸이를 돌보던 승호는 해임을 당하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버릴 일 하나만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저자 소개

저자: 김정남

 

저자 김정남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곳에서 공부하다 김승옥 소설에 대한 글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펴낸 책으로 문학평론집 『폐허, 이후』, 『꿈꾸는 토르소』, 『그대라는 이름』, 소설집 『숨결』(제1회 김용익 소설문학상 수상작), 『잘 가라, 미소』(2012년 4분기 우수문학도서)가 있다. 무책임한 긍정은 도저한 허무보다 해로우며, 갈수록 뻔뻔해지는 세상에 맞서 자신의 글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외쳤던 작가는 소설집『잘 가라, 미소』에서 좌표를 잃고 떠도는 고단한 인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그의 첫 장편소설인『여행의 기술』은 한 남자의 비루한 삶을 더욱 처절하고 비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불행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과 연민은 강인하고 냉철한 문장 속에서 슬픔을 극대화시키며 긴 여운을 남긴다. 

차례

 

1_ 헌 그물코
2_ 복수초
3_ 향미당
4_ 유랑극
5_ 봉별(逢別)
6_ 젖무덤
7_ 리베라메
8_ 밤으로의 긴 여로
9_ 그 후로 오랫동안

 

출판사 서평

 

“이 아비나 너의 생은 애초부터 틀렸어.
그럼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야.”

세상의 가장 외진 곳에서 멸종을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처럼
스스로를 버릴 일 하나만으로 떠난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 여행

상처의 앞점을 따라 걸어가는 한 남자의 아프고 고단했던 시절을 다룬
소설이며 일기이며, 유서인 작품!

★ 7번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생의 지옥도 

비루한 삶의 족적을 따라가는 한 남자의 처절한 이야기

『여행의 기술』은 우리 시대의 절실한 고통 하나를 응시한 작품이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남의 이번 작품 역시 리얼리즘적인 시각에서의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평범한 리얼리즘 소설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한 대학의 비정년트랙 교수인 승호는 소위 ‘먹물’이자 연봉 이천사백만 원짜리의 ‘무늬만 교수’이고 그마저도 해임될 위기에 처한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승호의 가족사를 살펴보면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칼 맞아 죽은 아버지와 불에 타 죽은 어머니를 둔 가난뱅이”인 데다, “종말론에 미친 남편을 둔 불쌍한 누이가 유일한 피붙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뿐인 아들은 자폐아이고, 생활고에 지친 아내는 집을 나간 지 2년이 되었다. 이처럼 이 소설은 보통의 소설이 금기로 삼는 우연과 극단적 설정을 전면화함으로써, 사회나 현실보다는 주인공 승호라는 인간에게 주목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승호의 모습을 통해 『여행의 기술』은 단순한 리얼리즘 소설이 아닌 다른 차원의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작품으로 그 위상이 변모된다.
승호는 아들 겸이와 함께 죽음을 준비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이 길은 곧 자신의 지난 삶을 다시 체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7번 국도는 다시 말하면 승호에겐 과거의 기억을 화석처럼 간직한 상징적인 곳이다. 속초에서는 아버지를 묻었고, 강릉에서는 어머니를 묻었다. 7번 국도를 따라가는 길은 바로 승호의 인생을, 그 아프고 고단했던 시절의 뼈마디를 더듬어가는 행로인 것이다. 7번 국도 어디를 가더라도 상처의 압점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살았던 흔적은 모두 부서졌지만 상처는 고스란히 유적처럼 남아서 승호를 괴롭힌다.
7번 국도를 따라 승호의 여행기를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술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실 승호는 여행이란 형식을 빌려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여행의 방식을 통해 삶을 겨우 유지해나가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의 기술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비극적인, 너무나도 비극적인!
모든 감정을 무장해제시키는 강력한 파토스, 슬픔

고대부터 비극의 서사는 왜 소설사에서 단골 레퍼토리가 되어야 했는가. 그것은 아마도 비극이란 장르의 특성이 인간이라는 지도를 가장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비극에서 동반되는 강력한 슬픔의 파토스는 독자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나도 언젠가는 저런 비극적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아직 나는 비극에 빠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며, 비극에 빠진 인간에 대한 연민과, 모든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 인간이란 장르에 대한 연대책임이면서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지독한 슬픔일 것이다.
이 작품의 인물에게서 느끼는 우리의 정서는 한마디로 지나칠 정도의 슬픔이다. 슬픔은 모든 감정을 한순간에 무장해제시키는 강력한 파토스다. 이 소설은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것은 한 인간의 비극적인 생애를 관통한 우리 모두의 비극적인 서사일 것이다. 그 누가 당당하게 자신을 이 삶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소설이라는 허구적 장치를 대신해 안전한 역할극 하나를 감상하는 것이다. 현실보다 더 리얼한 소설 속 주인공이 비극에 빠지고, 비극의 구렁텅이에서 겨우 절망의 끈 하나를 잡은 것이 사실은 희망이 되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불현듯 우리는 비현실적인 허구 속에서 더 큰 위로와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 법이니까.

산 자의 걱정이란 매번 이런 거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신은 이것을 걱정하지 말라 했지만, 산다는 건 모두 이런 것을 둘러싼 근심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종결짓기 위해 극의 절정 부분에서 신을 등장시켰다. 서사 구조의 논리성이나 일관성보다는 신의 출현과 같은 외부의 초월적 힘에 의존하여 이야기를 끝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그런 우연적인 행운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실, 비루한 생을 조금 더 연장하는 정도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소설 속 이야기가 마치 현실로 옮겨오는 듯한 슬픔을 느끼게 되는 건 그러한 이유에서다.
어쩌면 여행의 기술이란 길과 길을 연결하는 것이 아닐까? 막다른 길이라고 생각할 때 포기하지 않는 것. 지나고 보면 하나의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상처와 고통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견뎌내는 것. 주인공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삶의 기술은 바로 자신의 아픈 상처를 꺼내 담담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저마다 여행의 종착점에서 새로운 삶으로 향하는 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속물과 잉여의 시대를 살아가는 초라한 인간들의 마지막 윤리!

90년대 소설이 집단 정치에서 개인 윤리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과도기였다면, 2000년대의 소설은 본격적으로 사적 담론인 개인 윤리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김정남의 『여행의 기술』은 ‘이 시대의 새로운 윤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이라 기록할 만하다. 그리고 그 윤리의 심연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고독을 목도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의 말은 이제 이 시대에서 얼마나 유효한 말일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한 인간의 비루함이 슬픔과 노여움을 넘어 그 어떤 애잔하고 처연한,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한 파토스로 독자를 이끌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공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개인의 윤리에 기존 사회가 지닌 윤리적 기준과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지의 판단 따위를 유보시킨다.
승호라는 인물은 사실 속물적이고 사회에서 일탈된 잉여적 존재이다. 잉여는 체제 안으로 포섭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경쟁에서 밀리고 배제된 수동적 아웃사이더이자 실업자이자 불안정 노동자이다. 승호가 속물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첫사랑 송희와의 불륜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통해 압축적으로 드러난다.속물이란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없는 주체로서, 자기의 내면이 텅 비어 있기에 축적과 소비에 집중한다.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현실과 마주하는 진정성의 윤리 대신 성공과 축적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결국 승호가 송희를 만나는 것 역시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위라기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평가된 하나의 가치를 소유하는 속물적 행위에 불과하다.
모든 고독한 인간들은 예외 없이 강박증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승호는 성공에 대한 열망, 사랑하고 싶은 욕망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자신의 존재를 개별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현대사회의 개인들의 내밀한 욕망을 대변한다.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만 상대적인 행복감을 느끼는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모두가 불행하지만 기실 불감증에 걸린 행복한 자들이다.
김정남의 『여행의 기술』은 승호라는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이라는 현시대의 문제적 인간을 그린 것만으로도 한국현대문학사에 기록될 만하다. 나아가 이 작품은 속물과 잉여 사이를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승호라는 주체의 심리적 에토스를 주밀하게 형상화해내고 있다. 김정남은 『여행의 기술』이라는 장편소설을 통해 ‘자기 옆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기’, ‘자신의 얼굴로 살아가기’, ‘자기 인생에 스스로 책임지기’ 등이야말로 속물과 잉여로 모든 주체를 조형해내는 이 무지막지한 시대를 살아가는 초라한 인간들의 마지막 윤리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