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권은 밤에게

온밤 내내 자게 하는 밤의 모성, 나이트룸!

  • 저자이신조
  • 출간일2012-09-11
  • 페이지206
  • 가격11,000원
  • 판형126*198mm
  • ISBN978-89-7288-420-0
  • 분야소설 > 한국문학
책 소개

온밤 내내 자게 하는 밤의 모성, 나이트룸!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성장 이야기를 그린 이신조의 소설 『우선권은 밤에게』. 한국 문단을 이끌어가는 대표 작가들의 신작 경장편을 소개하며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설락」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계부가 운영하는 작은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 일하는 여자. 아직 많은 것들이 낯설고 서툴지만, 그녀는 집을 남다르게 느낄 수 있는 재능을 지녔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찾고 있는 남학생을 만난다. 또 어느 날은 ‘나이트룸’과 함께 집을 옮겨 다니며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님들을 만난다. 그녀는 어두운 나이트룸 속으로 들어가 온전한 밤을 경험하게 되는데…. 스물두 살, 성년도 미성년도 아닌,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 같은 어린 여자. 차가운 도시 속에서 결핍된 모성을 채우고, 상처를 치유하고, 안식을 갈구하는 그녀의 성장 이야기를 섬세한 묘사와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저자 소개

저자: 이신조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현대문학' 신인공모에 단편 '오징어'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새로운 천사',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서평산문집 '책의 연인' 등이 있다. 1999년 제4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차례

작가의 말

우선권은 밤에게
작품 해설

 

출판사 서평

이신조가 묻는다,

 

당신에게 집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집을 찾는다. 편안히 몸을 누이고 마음을 쉬게 할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는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너의 집은 어디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깃들어 있는가.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집이 되어줄 수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집이 한 사람의 재력을 보여 주는 표상이 되었을까. 집을 사고팔면서 우리는 집(또는 방)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한 사람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고된 육신을 누이는 곳,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새로운 삶의 의미를 공유하는 곳, 일생의 땀과 눈물과 손때와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그래서 평안히 눈 감을 수 있는 곳. 이 소박하지만 중요한 무형의 가치는 집 또는 방이라는 유형의 공간을 통해 의미화된다. 때로 집 또는 방의 개념은 이러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기도 한다. 한 공동체가 개인에게 집이 되고, 개인이 한 공동체의 방이 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집이 되고, 한 마음이 다른 한 마음에게 방이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의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이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다양한 의미를 소설 속에 부리면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공간을 제시한다. 그것은 공간이면서 시간이고, 물질이면서 비물질이다. 그것은 있으면서 없고, 없음으로 있다. 꽉 차 있으면서 비어 있어서, 그것 안에 있는 대상을 정화시킨다. 그게 뭘까? 그것은 밤의 방,"나이트룸"이다. 나이트룸을 만나려면, 우선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집과 방의 의미를 하나씩 "느껴야"한다. 그 느낌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궁극의 공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스물두 살 어린 여자의 밤,
그리고 필요한 것은 나이트룸
 

 

 

나이트룸에서, 나는 길고 긴 잠을 잤다. 온밤 내내 잤다.
빛과 무관한 어둠처럼, 깨어 있음과 무관한 잠. 내 몸의 털 한 올, 피 한 방울,
세포 하나하나까지 모두 동의하고 받아들여진 잠. 그런 잠이었다.
쌍둥이 여사님들의 말대로 나는 밤의 일부가 된 것이다.

도시와 인간의 성장에 관심을 보여 온 이신조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주인공"나"를 통해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처럼 변해가는 도시인에게 인큐베이터와 같은 집과 방을 보여 준다. 뚱뚱하고 평범한 외모의 스물두 살 어린 여자,"나"는 계부의 부동산중개소를 관리한다. 집을 구하는 고객들에게 제각각의 공간들을 보여 주면서"나"는 그들의 삶에 접촉을 시도한다. 사람의 삶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가 보여 주는 집들과 방들의 이력도 그 공간이 가진 특유의 인상에서 드러난다."나"는 그렇게 집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본다."나"는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숨 쉬는 공간의 의미를 몸으로 알아내는 재주를 가졌다. 그리고 어두운 밤에 소곤소곤 들려주는 집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집에게 들려주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나"는 거의 매일 밤을 배회한다. 먼저는 부동산중개소를 찾은 손님들에게 낮에 보여 주었던 집들을 밤이 되어 다시 찾아가 집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그리고"밤의 집"과 공감하고 소통한다. 때로는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에 들러 음식을 사고, 찜질방에 들르기도 한다. 또 때로는 한 남학생의 일상을 추적한다.
"나"는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인근 전문대 신입생에게 관심이 있다."나"는 그가 찾는 방을 하나씩 보여 주면서 그를 읽어 나간다. 살기 좋고 쾌적하지만 그의 여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복층 원룸부터, 그의 여력이 미칠 법하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다소 불편한 지하방까지, 스무고개를 풀어나가듯 그 공간들의 차이를 통해 그를 추측한다. 그는 결국 그날"나"를 통해서 어떤 방도 계약하지 못하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후에"나"는 우연히 인근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그를 본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의 생활 반경을 배회하다, 어느 깊은 밤에 그를 다시 만난다. 그는 방을 얻을 보증금이 없지만 그때 보았던 지하방이 나갔는지 궁금하다. "나"는 그에게 매일 조금씩 청소했던 그 방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나"와 그는 서로의 처음을 나누고, 그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난다. 나는"춥고 뜨겁고 아프고 무섭다". 지금"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이트룸.

 


당신도, 밤의 일부가 되어 보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제 온밤 내내 잘 수 있어요.
밤이 되었으니 그럴 수 있어요.
아주 오래전의 그때처럼요.

"나"는 맞춤옷을 만드는 쌍둥이 여사들을 통해 나이트룸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기 전에 중년의 두 자매에게 집 한 채를 소개하는데, 집 임자가 쉬이 나타나지 않아 오래 비워져 있었던 그 집은"나"에게는 비밀스럽고 소중한 공간이다. 장독대가 많아서"장독대집"이라고 부르면서 혼자서 집을 청소하고, 가끔 그곳에서 잠을 자며 쉬다오는 곳. 모성 결핍의"나"에게 그 집은 일종의"품"과 같은 곳이었다. 쌍둥이 여사들은 장독대집을 보자 흔쾌히 계약하기로 한다.

중년의 두 자매가 장독대집을 계약한 이유는 나이트룸 때문이다. 작은 골방에 들어가 흔들의자에 몸을 의지하면서 잠시 잠을 자면, "나"는 온 밤을 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 온전히 밤이 된다.

빛 이전에 어둠이 있었다. 우리가 최초로 경험한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었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우리는 오롯한 어둠을 누렸고, 완전했고, 깊은 잠을 잤다. 완벽한 평안 속에서 어떠한 두려움도, 아픔도, 상실도 없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 어둠이 내려앉아 세상을 덮는 밤이 따뜻한 이유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그 온전한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주와 밀착되어 있었다. 어쩌면 우주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스물두 살, 성년도 미성년도 아닌, 인큐베이터 속 미숙아 같은 어린 여자,"나"는 그 나이트룸 속에서 결핍된 모성을 채운다. 다시 한 번 자궁을 경험하면서, 온전히 밤이 되면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에서 누락된 모성을 나이트룸을 통해 체험한 것이다."나"는 그렇게 차고 단단한 도시 속에서 밤을 만난다. 이제 그녀는 그 밤 속에서 세포 하나하나 올올이 다시 태어난다.

"나"는 신입생과의 처음 이후 나이트룸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때 나이트룸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직후인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나"는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이제 자신만의 모성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모성이란 전 생애를 또 하나의 인격체에게 비추는 것. "나"가 어떤 삶을 만들어갈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것은 어쩌면 독자 자신이 만들어 나갈 삶의 그림자와도 같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