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의 작가이자
세계 문단의 독보적인 존재 얀 마텔
그의 소설의 시작과 미래를 보여줄 대표작 3종 리커버 특별판 출간
소설이라는 예술이 죽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얀 마텔의 소설을 읽어보라.
_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의 저자)
맨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 출간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며 사랑받고 있는 그의 대표작 3종(『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셀프』, 『20세기의 셔츠』)의 리커버 특별판이 출간되었다. 이번 특별판에서는 그의 소설 미학을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산뜻한 표지와 미니멀한 판형으로 재단장하고, 각 권마다 시인 김혜순, 여성학자 정희진, 소설가 조경란, 서평가 이현우 등 이 시대의 영향력 있는 명사들의 추천사를 실어, 지금 우리가 얀 마텔의 작품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새롭게 조명했다.
얀 마텔의 첫 장편소설인 『셀프』는 한순간에 남성에서 여성으로(또는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이 바뀌는 주인공 ‘나’의 30년에 걸친 삶의 진실한 기록이자, 성 정체성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진지한 탐구서다. 이 책의 추천사를 맡은 시인 김혜순은 “『셀프』는 얀 마텔의 모든 소설이다. 얀 마텔 소설의 미래다”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그가 형성해온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응축된 작품임을 강조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젠더 폭력의 문제를 통해 소설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성 정체성의 문제는 나 자신, 곧 셀프(self)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이자 즐거운 탐구”여야 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그 문제는 가부장제 사회의 ‘폭력’으로 강제되는 상황에 놓여 있음에 주목한다.
“섹슈얼리티와 성 정체성, 남성이라는 것의 의미와 여성이라는 것의 의미, 그 둘이 만나는 방식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었다”는 작가는 우리에게 ‘한 인간의 본질이, 그 삶이, 성이 달라졌다고 변하는 것인가’라는 다소 당혹스럽지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얀 마텔이 들려주는 이 놀라운 이야기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믿기 때문에 진실이 되어버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얀 마텔Yann Martel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27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로 데뷔했고, 이후 『셀프』와 『파이 이야기』 『20세기의 셔츠』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썼다. 2002년 맨 부커상을 수상한 『파이 이야기』는 전 세계 41개국에서 출간되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얀 마텔은 이 작품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는 책 속에서 기독교·이슬람교·힌두교를 동시에 믿는 인도 소년 파이의 사유와 모험을 통해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이 이야기』는 2013년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개봉되어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하는 마텔은 캐나다 새스커툰에서 아내 앨리스 카이퍼즈와 네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옮긴이 황보석
1953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폴 오스터의 『공중곡예사』 『거대한 괴물』 『달의 궁전』 『우연의 음악』 『고독의 발명』 『뉴욕 3부작』 『환상의 책』 『신탁의 밤』 『브루클린 풍자극』 『기록실로의 여행』, 막심 고리끼의 『끌림 쌈긴의 생애』,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 피터 메일리의 『내 안의 프로방스』, 시배스천 폭스의 『새의 노래』,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 등 다수가 있다.
1장
2장
옮긴이의 말
“『셀프』는 얀 마텔의 모든 소설이다. 얀 마텔 소설의 미래다.
나는 이보다 깊고 세밀하게 몽땅 벗어버린 일기를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
얀 마텔 첫 장편소설 『셀프』 리커버 특별판
『셀프』는 여성,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갈라진 인간의 정체성을 탈피하기
위한 처절하고도 철저한 고안이면서, 동시에 한 작가의 탄생을 위한 기획이다.
여기 남자로 태어나 18년을 살다가 여자가 되어 20대를 통과한 다음
다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섹슈얼리티를 갖게 된 한 인간의 셀프가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기쁨, 죽음과 같은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의 시간이 소설의 중심에 놓여 있다.
_김혜순(시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얀 마텔이 탄생시킨 주인공 ‘나’는 자상한 외교관 부모 밑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젊고 지적이고 솔직하고 변화무쌍하고 허심탄회하고 장난스럽고 삶을 포용할 줄 아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세상을 살펴보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어린 ‘나’는 지렁이처럼 부드럽고 암수를 한 몸에 지닌 존재가 부럽고 경이롭다. 그리고 남자답지 못한 ‘나’를 ‘호모’라 놀리는 사내아이들의 폭력과 편견에 상처를 받는다.
그런 그(또는 그녀)가 놀라우리만치 풍부하고 인간적이고 복잡하고 달콤새콤한 세상을 굽이굽이 거치며 살아온 이야기가 바로 『셀프』다. ‘나’는 세상을 누비면서 나를 찾고, 느끼며 살아간다. 낯선 여행지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낯선 사람, 낯선 언어, 낯선 모든 것들 속에서 마음을 열려 한다. 유년기, 사춘기의 ‘나’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공감할 수 있는 성장의 드라마로 굽이치며 흐르고, 그 눈에 띄지 않으나 어느 순간 알아차리게 되는 커다란 성장의 면면들이 유쾌하고 의미심장하게 펼쳐진다.
“‘오늘 난 사랑할 사람을 찾아냈어.’
그것은 희망이나 망상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섹슈얼리티를 갖게 된 한 인간의 셀프가 있다
우리의 몸-성별은 나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이고
즐거운 탐구여야 하는데, 그것이 폭력으로 강제된다면?
얀 마텔은 이 문제를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 풀어놓는다.
읽기의 쾌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문장, 지적인 즐거움,
정치적 깨달음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황홀한 체험이다.
_정희진(여성학자, 『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그러던 ‘나’는 열여덟 살이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여성으로 성이 바뀌는 체험을 한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이 변화에 허둥댄다. 그러나 여성이 된 ‘나’는 우주의 이치에 잇닿아 있는 듯한 월경을 체험하고는 두렵지만, 황홀감에 빠진다. 그리고 그 변화를 받아들인다. 변한 것은 육체일 뿐이다. 육체의 변화로 인해 ‘나’는 보다 본질적이며 완전한 것, ‘사랑’을 지향한다. 그리고 사랑을 시작한다. 그 사랑은 이성애이거나 동성애다. ‘나’는 어머니 같은 여성, 친구 같은 남성, 아버지 같은 남성, 형제 같은 남성, 오누이 같은 여성과 서툴거나, 맹목적이거나, 헌신적이거나, 때로는 집착에 괴로워하고 때로는 의심에 아파하는 사랑을 한다. 진정한 사랑, 티토라는 남자를 만날 때까지.
여성이 된 ‘나’는 다양한 인물들과 차례로 사랑에 빠지고, 한때는 무모하리만큼 육체에만 탐닉하는 사랑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진실한 사랑을 만나 지상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 사랑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 영혼을 부수는 것과 같은 끔찍한 고통(강간)으로 인해 다시 남성이 되고 만다. 소설은, 오랜 방황의 끝에 선 주인공이 따스한 여성의 젖가슴에 자신의 등을 기대며 “그녀의 젖가슴이 나를 통과해서 내게도 젖가슴이 생”기기를 바라며 잠이 드는 안타까운 장면으로 끝난다.
성장의 두려움을 느끼고,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품고,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거나 상처받는 존재,
인간이란 존재와 변화무쌍한 삶의 이야기
독특한 내용을 넘어서서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마텔 특유의 빛나는 문장력이다. 소설의 문장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하는 작가(또는 주인공 ‘나’)의 의도대로 원문과 번역문을 2단으로 편집하여 병치시킨다. 작가는 두 가지 언어의 느낌과 운이 서로 비교되도록 단어들을 배치하여 “각각의 언어는 그 자체로서만 일가붙이의 엮임인 것이 아니라 쌍둥이, 즉 그 옆에 있는 언어의 해당어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두 언어 사이의 소통일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교류와 소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었을 법한 성性에 관한 아이의 끝없는 의문과 엉뚱한 호기심, 그로 인해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점차 녹록치 않은 인간의 삶, 정체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로 무게를 더해간다. 누구나 삶의 도정에서는 성장의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품고, 어리석음에 빠지고,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거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약해지곤 한다. 작가는 인간이 살면서 겪는 정신과 육체의 대립과 조화, 갈망의 본질에 대해 섬세하고 유려한 그만의 필치로 주인공 ‘나’로 대변되는 인간이란 존재와 그를 둘러싼 변화무쌍한 삶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기발한 문체와 구성, 그리고 인간 욕망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통찰로 독자들을 휘어잡는 이 작품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소설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