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 수상작 ★
독보적인 문명 감식가 후지와라 신야의 원점, ‘동양 여행기’ 3부작의 결정판
여행의 끝, 인간의 끝, 세계의 끝에 선 그가
온몸의 감각으로 목도한 ‘동양극장’의 무대가 시작된다
압도적인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글과 사진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여행서의 전설이 된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의 저자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방랑』(1982~1983)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은 『동양방랑』은 작가이자 사진가, 사상가, 평론가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온 후지와라 신야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동양의 전모를 파악하고자 길을 나선 400여 일간의 기록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기록한 이 책은 사람 사는 세상의 거짓 없는 모습을 좀 더 적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육체적, 정신적 훈련의 결과물이다.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의 번역을 맡은 바 있는 이윤정의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이는 『동양방랑』은 이번 개정판 출간을 기념해 소설가이자 서평가인 장정일의 날카로운 혜안이 담긴 해설을 수록하였으며, 탁월한 문명 감식가로서의 면모를 조명하고 있다. 후지와라 신야의 원점이 되는 동양 여행기를 결산하면서, 그를 영원한 청춘의 구루로 자리매김한 ‘방랑’ 3부작의 대미를 완성한 책이다.
지은이 후지와라 신야 藤原新也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현 모지 시(현재 기타큐슈 시 모지 구)의 여관을 운영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여관이 파산하자 고교 졸업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명문인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에 입학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중퇴, 1969년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인도로 떠난다. 이후 서른아홉 살 때까지 인도, 티베트, 중근동, 유럽과 미국 등을 방랑한다. 1972년에 펴낸 처녀작 『인도방랑』은 당시 청년층에게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8년의 인도방랑 후의 여정을 그린 『티베트방랑』은 『인도방랑』과 더불어 저자의 원점이 되는 대표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동양 여행기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동양방랑』은 1980년에서 1981년까지 터키, 시리아, 인도, 티베트, 미얀마, 중국, 홍콩, 한국 등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400여 일간의 여정으로, 삶의 임계점에 도달한 저자가 다시금 존재의 의미를 되찾게 한 ‘동양극장’이라는 무대 위의 “비할 데 없이 인간적인 곡예”를 기록하고 있다.
1977년 『소요유기』로 제3회 기무라 이헤에 사진상, 1982년 『동양방랑』으로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는다. 그 밖의 주요 저서로 『아메리카 기행』 『도쿄 표류』 『메멘토 모리』 『침사방황』 『시부야』 『바람의 플루트』 『황천의 개』, 소설 『딩글의 후미』, 자전소설 『기차바퀴』 등이 있다.
옮긴이 이윤정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과 도쿄외국어대학 대학원 연구생 과정을 수료했다. 한동안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했고, 현재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첫 인도 여행에서 그곳 사람들과 살아가는 모습에 매혹되어 오래 인도 주변을 서성였으며, 지금도 번역 일 틈틈이 소박한 배낭여행자가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옮긴 책으로 『인도방랑』 『티베트방랑』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 『악마의 패스』 『시대가 변했다』 『당신이 솔로일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이유』 『국수와 빵의 문화사』 『하게타카』 등이 있다.
01
1장 겨울 해협 / 이스탄불
2장 양 창자 수프 / 앙카라
3장 장미의 나날 / 지중해・앙카라
4장 몽해 항로 / 흑해
5장 이슬람 사색 기행 / 시리아・이란・파키스탄
6장 동양의 재즈가 들린다 / 콜카타
02
7장 심산 / 티베트
8장 황금빛 최면술 / 버마
9장 풀의 창루 / 치앙마이
10장 신이 없는 대성당 / 상하이
11장 보름달 밤, 바다의 둥근 돼지 / 홍콩
12장 붉은 꽃, 검은 눈 / 한반도
종장 여행, 결국 사상이다 / 고야산・도쿄
작품 해설 / 장정일(소설가)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1969년 여름 스물다섯 살 때에 떠난 인도 여행을 시작으로 이후 10여 년간 인도, 티베트, 중근동, 유럽과 미국 등을 방랑했다. 모국인 일본이 2차 대전 원폭 이후 서구 물질문명으로 인해 민족적 자의식을 완전히 상실했다 판단하고 이에 대한 타개책을 궁구하던 끝에 오른 방랑길이었지만, 그는 이내 끝 모를 무력감과 회의에 빠지고 만다. 눈이 흐려지고, 혀가, 귀가, 코가 무감각해지는 상태, 그는 그것을 여행과 삶의 임계점에 도달하여 마침내는 얼어붙는 단계, 즉 ‘빙점’이라 이름 한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모든 것, 그 가운데 특히 인간이 귀찮았고, 당연히 글이나 사진에서도 인간은 보이지 않게 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흥미를 잃어버린 정신과 육체의 쇠약 상태에 시달린 저자가 인간성의 회복과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아시아의 서쪽 끝 터키에서 동쪽 끝 일본에 이르는 ‘동양방랑’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을 보면서 동양에 대해 생각했다.
온갖 냄새가 코끝에 들러붙어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에게해와 마르마라해를 따라 기차로 40시간, 동양이 시작되는 이스탄불로 향하는 동안 시시각각 다가온 것은 냄새였다.”(45쪽) 썩은 오렌지 껍질, 돼지머리, 송장, 광인, 전염병 환자, 만취한 사람. 에게해 서쪽, 서양의 땅에서는 눈가림되거나 포장되어 말살되고 마는, 모든 무르익고 썩어가는 것들의 냄새가 바로 동양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가 기사회생하기 위해 동양을 택한 이유는, 애초에 방랑을 시작한 곳도, 에세이스트가 된 곳도, 사진작가가 된 곳도 모두 동양이었기 때문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그런 동양에 대해 “혈액이 요동치는, 선악과 미추가 뒤섞인 세계”(48쪽) 라고 일컫는다. 아시아의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럽고 어리석고 못난 보통 사람들의 생활 의식(儀式) 속으로 섞여들어 간 저자가 목도한 것은 이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흔적을 새겨나가는 삶의 한복판, 다름 아닌 ‘일상’이었다.
식당의 낯선 손님에게 접근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운 후 사례금을 받는 거식녀, 지중해에 수장된 트랜스젠더 하산 타스데미르, 한밤에 처절하게 불경을 외기 시작하더니 새벽이 되어 속세로 떠난 마흔네 살의 파계승, 목을 매는 게 특기라는 치망마이의 실성한 매춘녀, 돼지 방광을 부낭처럼 매달고 바다를 헤엄쳐 홍콩으로 밀입국한 셰이 형제…….
창녀부터 승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들의 남루한 일상이 자리 한 공간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인간의 온기 그 이상의 ‘살아 있다’는 뜨거운 열망의 목소리였고,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관통해 흐르는 ‘피’의 역사였다. 생동하는 삶의 활기로 요동치는 내면을, 후지와라 신야는 스스로 “그저 ‘길을 걷는 자’였고 보고 느낀 것들을 ‘보고하는 자’”(477쪽) 라고 고백한 것처럼, 빼거나 보탬 없이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록한다.
그렇게 방랑 10년 만에 찾아온 ‘빙점’에서 시작된 여행은, 동양 곳곳의 기저 깊숙이 침투하는 발걸음이 더해질수록 인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뒤바뀐다.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가득 찬 육체를 가진 존재들은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더 절실하게 자각하도록 이끌었고, 그것을 순시(瞬視)에 간파하는 찰나의 과정 안에서 그는 자신의 빙점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정체 모를 냄새가 감도는 양 창자 수프의 시큼한 맛을 혀가 반기기 시작하고, 인간적인 슬픔과 분노가 담긴 판소리 가락과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부르던 치앙마이 창부의 벼 베기 노래가 울려 퍼진다. 먼 도시의 불빛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영혼처럼 반짝이고, 고요한 산사에 내리는 눈송이들은 관음처럼 빛난다. 마침내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한 그는 이 ‘동양극장’이라는 이름의 길 위에서 “비할 데 없이 인간적인 곡예”를 펼쳐 보인 사람들을 향해, ‘인간 천재들’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인간의 표정 너머에서
역사성과 사회성을 포착해내는 생생함
후지와라 신야의 글과 사진은 그의 장년기에 지나쳐온 객지들을 담아낸 기록임에도 여전히 분방하고 거침없는 청춘을 닮았다. 그는 여정을 옮길 때마다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운 언어와 사유를 통해 현지의 삶을 그려낸다. 터키 사람들의 심각하고 검소한 표정에서 가난을 견뎌야 하는 사회 상황을 읽어내고, 시리아에서 파키스탄에 이르는 이슬람 국가 사람들에게서 분노의 표정을 발견한다. 후지와라 신야는 이것을 사막이라는 토양을 기조로 하는 추상적 풍토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사막과 같은 황량하고 삭막한 자연 환경에서 코란이라는 강력한 종교적 법률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반면 구상적인 자연 환경에 속하는 인도 사람들의 표정은 삶의 표준만을 강요하는 풍토의 이슬람과는 대비된다. 사소하고 경박한 물질조차도 ‘신’의 색깔로 물들여버리는 인도인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이다 싶을 만큼 유구한 자족의 표정이 어려 있다.
동양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을 오가며 인간의 표정들을 속속들이 파헤친 후지와라 신야가 매료된 것은 바로 이 표정에 담겨 있는 역사성과 사회성이다. 불교국인 미얀마, 태국 사람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조용한 미소를 발견한다. 중국 사람들은 포커페이스다. 중국인만큼 어떤 장면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인종도 드물다. 필리핀 사람들에게서는 일본 다음가는 백치의 표정을 읽어낸다. 그리고 한반도는 불교적 염화미소라기보다는 유교적 박애에서 오는 미소를 가지고 있다.
후지와라 신야는 인간성의 발견에 대한 고백에서 나아가, 기후나 지형 같은 환경적 영향을 통해 문명의 특징을 통찰해내는 대목에 이른다. 그는 인도를 경계로 나뉘는 동양의 상반된 두 가지 풍토에 대해 성찰하기도 하고, 미얀마 국경을 경계로 태국에서부터 인간적 정서가 결여된 환경을 마주하고는 대량 생산과 이윤 추구에 몰두하는 ‘일본주의’가 유입되어 있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작가는 동양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정신과 물질의 채도가 다름을 간파한다. 가령, ‘노인 혐오’라는 사회적 현상은 일본에서 두드러지지만, 동양의 동쪽 전반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근대화를 맹목적으로 추구해온 중국, 한국, 일본 등은 ‘새것’을 향한 강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새롭고, 미래적이고, 급진적인 것에 절대적 가치 기준을 두는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노인 혐오는 어쩌면 자연스럽고 숙명적인 현상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이러한 성찰 속에서, 인간은 누구나 늙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미래형 도시 사회가 유포하는 물질적 에테르를 경계할 때, 괴롭고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 역동적이고 풍요한 삶이 가능해진다고 진단한다.
“나는 그 ‘동양극장’의 무대 위 천재적인 인생 연기자들 속에서
언제나 단역이었다.”
동양의 보통 사람들이 연기하는 비할 데 없이 인간적인 곡예
30여 년 전 그의 성찰대로, 동양의 서쪽과 동쪽은 여전히 서로 다른 채도를 보여주고 있다. 동양의 서쪽은 ‘아랍의 봄’ 이후 종교적·정치적 분쟁에 휩싸여 있고, 동양의 동쪽은 더욱 강고해진 물질의 갑각류로 무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작가의 목소리에는, “동양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48쪽) 보겠다는 각오처럼, 미래까지의 여정을 계획하려는 웅숭깊은 의지가 담겨 있다. 동양의 방방곡곡에서 ‘피’와 ‘표정’과 ‘정신’까지 독해한 끝에, 작가는 모국 일본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한다. 개인 차원의 이념(도덕)과 집단 차원의 이념(종교) 가운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일본인을 통해 후지와라 신야는 불균형과 모순을 발견하고, 우리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화상을 발견한다. 동양의 전역에 감춰진 생의 이면들을 아우르며 자기반성에 도달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가꿀 힘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을 관통하는 사유의 동공들로 빼곡히 수놓인 이 책은, 후지와라 신야를 그 자신에게로 이끌었듯,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이끄는 하나의 방대한 지도이자 청명한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