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순응적인 인간에서 거대 고양이로 변신한 아버지,
말하는 병아리에 중독되어 은둔하는 ‘병아리형 외톨이’들,
무시무시한 성욕을 가진 좀비로 변해버린 모범생 진구,
음식 쟁반을 일곱 개나 머리에 이고 다니다, 홀연히 우주로 사라진 어머니……
권력과 감시, 규율이 지배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
‘진짜’ 삶을 향해 거침없이 탈주하는 자들의 변신담,
또 하나의 ‘별종’ 표식, 김설아 첫 소설집!
“어디 한번 제 다리를 잘라보십시오. 끝까지 춤추며 도망갈 겁니다.” 열일곱 살 고등학생들의 탈주를 통해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자에 대해 탐색했던 김설아. 2004년 《현대문학》에서 「무지갯빛 비누 거품」으로 등단한 김설아의 첫 번째 소설집 『고양이 대왕』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 『고양이 대왕』에서는 김설아가 등단 이후 끈기 있게 그려온 ‘진짜’ 삶을 향한 탈주를 사회제도와 자본주의 체제 등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장치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다양한 몸부림으로 조형해내고 있다. 변칙과 우발, 예외적 상황과 초현실적 풍경이 믹싱되어 있는 소설들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용암 줄기를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인간 군상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들의 초상 하나하나에는 그 뜨거움을 감당하고라도 자신만의 춤을 추겠다는 결연한 각오가 담겨 있다. 자유자재로 흘러가는 문장과 Sf, 오컬트, 패러디, 판타지 등 경계를 허무는 실험, 날카로운 현실 풍자, 탄탄한 스토리텔링은 김설아가 이야기의 묘미를 정확히 간파하는 작가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아마도 이제 김설아는 그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질 또 하나의 ‘별종’ 표식이 될 것이다.
김설아의 소설에서 억눌렸던 인간들은 그 반작용의 에너지로 ‘다른 시간’을 살거나 ‘다른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된 아버지와 좀비가 된 친구는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를 죽지 못하게 한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니체)”. (…) 김설아는 우리를 뜨거운 욕구의 세계―마약과 본드와 짐승과 좀비와 광인과 환각의 세계로 데려간다.
이곳은 정상正常에서 벗어난 세계이자, 정상頂上에서도 벗어난 세계이다. 반대로, 반대로 힘껏 춤을 추는 자만이 이 세계의 가장 깊고 가장 빛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_정실비(문학평론가, 「작품 해설」에서)
김설아
1980년 부산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2004년 《현대문학》에서 「무지갯빛 비누 거품」으로 등단했다. 테마소설집 『캣캣캣』 『피크』, 장편소설 『공작새에게 먹이 주는 소녀』가 있다.
외계에서 온 병아리 7
모든 것은 빛난다 35
무지갯빛 비누 거품 67
고양이 대왕 91
우리 반 좀비 121
이달의 친절 사원 153
일곱 쟁반의 미스터리 181
청년 방호식의 기름진 반생 207
작품 해설 - 어느 쾌락주의자의 탈주하는 실험실 · 정실비 235
작가의 말 254
“내게도 아버지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소리 한번 지르는 법 없이,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하신,
.......
거대 고양이가 되어버린 나의, 아버지.”
이 소설집에 일관되게 흐르는 기조 가운데 하나는 변신담이다. 제목에 빗대어 말하자면 권력과 감시, 규율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고양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표제작인 「고양이 대왕」에서는 근면 성실하고 예의범절 깍듯한 한 사십 대 가장이 등장한다. 평일에는 야근을 일삼다 주말이면 죽은 시계처럼 잠을 자던 아버지는,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온갖 질책과 압박을 받다가 위염으로 쓰러져 일주일간 회사를 결근한다. 결국 그는 회사의 갱생 프로그램에 초대받게 되는데, 이후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해진다. 전에 없이 애정 표현이 많아진다든가, 정신 사납게 우당탕 달려간다든가,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든가. 심지어는 나의 몸 구석구석에 제 얼굴을 비비고 고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톱을 드러내고 앞발을 움직이며 애교를 떨기도 한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고양이가 되고 만 것이다. 얄궂게도 회사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다. “갱생 프로그램 실패. 야성에 눈을 뜨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동급생 주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아버지와 같은 회사의 직원인 주리의 아버지도 흰 비둘기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그때의 눈빛과 손톱의 날카로움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것 같습니다. 그 시선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은 애완동물이 아니라고. 이렇게 답답한 곳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고._115쪽
변신담은 고분고분하고 체제 순응적인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가 “내가 왕이다!”라고 외치는 듯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야산을 헤치며 달리는 고양이 대왕이 된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외계에서 온 병아리」는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라는 전제에서 시작되고 있다. 등장인물은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접해온 약물이나 도박, 섹스 중독자가 아니라 병아리 중독자들이고, ‘은둔형 외톨이’ 대신 ‘병아리형 외톨이’들이다. “난 병아리예요. 우리 친구해요”라고 말하는 병아리의 주문은, “한평생 찾아 헤매었던 완벽한 교감 상대”를 찾았다는 놀라움과 환희에 젖게 만든다. 파고다공원 앞 굶주린 노숙자, 토익 800점대를 넘지 못해 울적해하는 취준생 등 사회 약자층에서 시작된 병아리 중독증은 급기야 젊은 부인, 늙은 노파, 중년 남성, 유치원생,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전 인간종에게로 급속하게 확산된다. 전염병과 다른 점이라면 바이러스가 아니고, 고통이 아니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를 만난 사람들은 기꺼이 병아리 중독자가 되어간다.
당신은 나를 완벽히 이해 못 해. 인간관계에는 이제 지쳤어.
타인이 필요 없는 세상에서 살 거야. 이대로 행복해. 충분하다고. _30쪽
김설아가 입심 좋게 풀어놓는 변신담의 진화는 이 외에도 계속된다. 「우리 반 좀비」에서 성별을 떠나 모두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던 모범생 진구는, 무시무시한 성욕의 화신인 좀비 ‘진구스’가 되고,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취직’ 대신 ‘취집’을 한 소라는 출산을 한 달 앞두고 닥친 유산에 대한 충격으로 다이아몬드의 현신인 그레이스 켈리가 된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장 통에서 널따란 은색 쟁반을 일곱 개나 머리에 이고 다니던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마녀’이거나 아예 외계인이 되어 종적을 감춘다.(「일곱 쟁반의 미스터리」)
“우주로 가는 거야. 그동안 이것들 때문에 지구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 지구의 중력에서.”
그녀는 머리에 지고 있던 쟁반 더미를 내려놓고는 천천히 위로 떠오른다. 그녀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녀가 내려놓고 간 식판들 역시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_198쪽
‘이달의 친절사원’으로 뽑힌 패밀리 레스토랑의 직원은 살기등등한 얼굴로 욕설을 내뱉는 공격성을 표출하고,(「이달의 친절 사원」) 사회의 생리에 일찍이 눈을 떠 오로지 부의 축적에만 매달려온 청년은 이해타산을 떠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식성’을 가진 인간으로 변모한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값싼 인스턴트가 아니라 정신적 만족과 안정이 깃든 건강식을 찾게 된 것이다.(「청년 방호식의 기름진 반생」)
우리는 우리를 시시때때로 짓누르는
이 고통을, 불안을, 슬픔을, 숱한 두려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자신의 꿈과 다이아 결혼반지를 맞바꾼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소라는 임신을 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것도 잠시, 이내 유산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직 소라의 왼쪽 손가락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만이 빛바랜 현실을 조롱하듯 영원한 광채를 뿜어낸다. 현실에서 확실한 행복을 발견할 수 없었던 소라가 다이아몬드의 현신인 그레이스 켈리와 대화하는 모습은, 「외계에서 온 병아리」에서 길바닥에 드러누운 채 병아리의 말을 들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사람들의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몸은 죽어도 정신은 남지.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를 볼 수 없어. 앞으로는 현재만을 생각하면서 살도록 해. 미래도 기다리지 마. 모든 기다림과 희망을 버릴 때 진정한 광채를 볼 수 있을 거야. 그게 바로 영원이야. _47쪽
이들을 통해 김설아는 우리가 고통과 불안과 슬픔과 두려움들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김설아는 애초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 또한 인식하고 있다. 이를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라고 덮어두고 결론짓는 대신 소설은 우리에게 힘주어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시시때때로 짓누르는 이 고통을, 불안을, 슬픔을, 숱한 두려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길들일 수 없는 존재들을 위한
김설아의 하이브리드 사운드!
변신담의 외피를 두르고서 경쾌한 리듬과 음울하고 비판적인 음성이 혼종되어 있는 이 소설집은 세상의 모든 길들일 수 없는 존재들을 대변하는 하나의 뜨거운 선언과도 다르지 않다. “앞으로 점점 더 가혹해질 자본주의”로 표상되는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도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발견에서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존엄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 죽기 위해서지”라는 단언처럼 저마다의 치열한 삶 끝에는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결말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모든 살아 있는 인간은, 그러기에 존엄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죽기 위해서지. 그것 말고 이 세계는 아무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다.
그러니까 부디 네 멋대로 살라고.”_151쪽
김설아는 미래에 저당 잡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지나쳐버리는 현재의 빛나는 순간들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과거의 고통과 슬픔,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서 현재의 감각과 본능을 일깨우라는, 즉 “부디 네 멋대로 살라”는 당부의 말을 건넨다. 이는 자포자기의 방종이나 일탈이 아니라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쉼 없는 모색과도 통한다. 김설아가 이번 소설집에서 보여준 거침없이 탈주하는 ‘변신’의 에너지는 우리 스스로가 진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 한 ‘지금 여기’에서 계속될 것이다. 활기찬 몸짓과 반짝거리는 눈빛, 더없이 도도하고 당당한, ‘고양이 대왕’을 닮은 걸음걸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