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궁극이자 실체로서의 결혼에 대한 톨스토이의 소설적 응답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에 버금가는
톨스토이 후기의 사상과 철학, 인생관이 응집된 대표작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톨스토이의 걸작 『크로이체르 소나타』. 러시아 대문호의 작품들 중에서 중단편을 엄선해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러시아 고전산책」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한 남자의 불타는 질투와 아내 살해를 그린 이 작품은 어느 철도 여행객이 열차 안에서 밤새 다른 여행객의 인생 고백을 듣는 이야기로, 대화 형식을 사용해 생동감과 현실감을 더했다. 아내 살인범 포즈드느이셰프의 독백에 가까운 고백은 얼핏 질투심에 불타 아내를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에는 진정한 결혼생활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사랑과 결혼, 배우자의 부정과 여성해방, 자녀문제 등을 진지하게 다루면서 남녀평등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남녀관계는 소유가 아닌, 서로를 진정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톨스토이의 후기 중단편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만년에 작가가 가졌던 사상과 철학, 인생관 등이 응집되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톨스토이의 3대 작품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에 버금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최고의 러시아 고전과 최상의 원전 번역으로 만나는 세기의 수작, 작가정신 <러시아 고전산책> 시리즈.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 도스토옙스키부터 러시아의 대표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톨스토이, 근대 희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재적 작가 체호프, 러시아의 3대 문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불리는 투르게네프 등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영원한 삶의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레프 톨스토이 Лев Н. Толстой(1828~1910)
남러시아 툴라 근처에 있는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명문 백작가의 사남으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카잔대학에서 3년 동안 공부한 후 대학교육에 실망을 느껴 영지로 돌아가 농민생활 개선에 힘썼으나 실패하고, 잠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1851년 3월 「어제 이야기」를 썼으나 미완성으로 남겼다. 이듬해 《소브레멘니크》에 「소년 시절」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에 이어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의 역작을 남겼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할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1910년 10월 28일, 가족들 몰래 가출하여 11월 7일, 라잔 우랄 철도의 작은 간이역 아스타포보(현 톨스토이역) 역장 관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옮긴이 고일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 슬라브어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화상』 『젊은 근위대』 『에로스가 속삭인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백야·우스운 자의 꿈』 『러시아 독본(톨스토이 문학전집)』 『중단편선Ⅲ(톨스토이 문학전집)』이 있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007
옮긴이 후기 205
톨스토이 연보 193
“평생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하나의 양초가 평생 탄다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톨스토이가 세상의 모든 결혼에 던진 물음!
주인공 포즈드느이셰프가 결혼이라는 구속에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은 소설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집에 있던 다마스커스제 단검으로 살인을 저질러 파국에 이르는 종국의 사건이나 연인인 다윗왕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전장으로 떠나보낸 우리야의 아내를 빗대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것 등은 이러한 주인공의 심리를 대변하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주인공이자 화자인 남편은 억압되어 있던 반항과 자유를 잃은 데 대한 복수심에서 아내를 죽인 것이다. 주인공이 아내를 단순히 자신의 자유를 억압한 존재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이자 동반자로서 비로소 인식하는 순간은 아내가 숨을 거두기 전과 관 속에 누워 있을 때뿐이다. 그제야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비겁하고 잔인했는지를 깨닫는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주인공의 성(姓)인 포즈드느이셰프에서 ‘포즈드느이’가 러시아어로 ‘때늦은’을 가리킨다는 점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사랑과 결혼, 배우자의 부정과 여성해방, 자녀문제 등을 진지하게 거론함으로써 사실상 진정한 남녀평등의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남녀관계는 소유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이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예술가 톨스토이’에서 ‘도덕가 톨스토이’로……
당시 사회의 도덕적 타락상을 고발하는 작품
또한 이 작품은 사랑과 결혼의 문제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의 도덕적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기도 하다. 장편소설이 아님에도 톨스토이의 문학세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은 1880년대 들어 비관적으로 변화한 그의 인생관이 적나라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톨스토이는 위선으로 가득 찬 러시아 귀족사회 및 러시아정교회에 회의를 갖고 러시아 농민과 초기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예술가 톨스토이’에서 ‘도덕가 톨스토이’로 변모해간다.
사랑의 실체는 육체의 욕망일 뿐이며 남자에게 결혼은 그 욕망의 충족인데, 여자는 그 결혼이 사랑의 궁극이며 실체라고 착각한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불타는 질투와 아내 살해를 통해 사랑은 없다고 선언한 톨스토이가 세상의 모든 결혼에 던진 소설적 응답이다. 얼핏 보기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가 연상시키는 이 소설은 그러나 질투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고 안에 담겨 있는 것은 남녀 간에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결혼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물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결혼이란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대답은 독자 스스로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