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이어도를 고달픈 이승의 삶 저 맞은편에 있는 낙원, 이승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 사시사철 먹을거리 걱정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무릉도원으로 생각했습니다. 거친 제주 앞바다에 물질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동지’는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전설의 섬 이어도에 엄마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동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새 형 ‘영등’은 이어도를 제주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수중 암초로만 여기지요. 이어도는 영등의 생각처럼 먼 바다에 있는 수중 암초이기만 할까요? 아니면 동지의 생각처럼 전설 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섬일까요?
『이어도사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도에 다녀온 소년 동지의 이야기가 신화와 역사를 오가며 아름답고도 신비롭게 펼쳐집니다. 제주 특유의 향취를 풍기는 이 책을 통해 이어도가 가지는 해양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고,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었던 신비의 섬 이어도의 문화적 가치를 마음에 아로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글| 김영욱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고려대학교와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공부했다. 어린이책 칼럼니스트이자 작가, 번역가, 연구가로 활동하며, 앞으로 멋진 동화 작가이자 훌륭한 그림책 연구자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다. 쓴 책으로 어른들이 읽는 그림책 에세이 『그림책, 음악을 만나다』 『그림책, 화를 만나다』와 동화 『책벌레 대소동』 『신기한 베개』 『내 꿈이 제일 좋아』 『네모의 수학 울증』 『이야기꾼의 비밀』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비의 강』 『미스 히코리』 『알포카네의 수상한 빨래방』 『피터 래빗 이야기』 『장화 신은 고양이』 『성냥팔이 소녀』 『노아의 방주』 『크리스마스 선물』 『트랩: 학교에 갇힌 아이들』 등이 있다.
그림| 최성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수년간 패션 머천다이저로 일했으며,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해 결국 어릴 때 꿈꾸던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자연과 교감을 통해 그림으로 표현하여 누구나와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 그린 책으로 『형이 왔다!』 등이 있다.
추천사
1. 소코트라 초
2. 말발굽 소리
3. 하멜 표류기
4. 비바리 심방
5. 물장오리
6. 잃어버린 과거
7. 금남 구역
8. 우물 속으로
9. 미르 여신
10. 액막이
1.1 물거품
12. 영등 형
작가의 말
참조
조끄뜨레 하기엔 하영멍 섬, 이어도
“혹시 우리 엄마가 그 섬에 있지 않을까?”
모슬봉과 가시악이 낮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제주 남서쪽의 모슬포. 이곳에 한밤중이면 망아지를 찾는 어미 말의, 어미 말을 찾는 망아지의 애달픈 울음소리에 이끌려 맨발로 대문 밖을 걸어 나가는 소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세상 단 한 사람, 오로지 소년에게만 들립니다. 소년의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울음소리를 쫓아 이슬 맺힌 오름을 헤매는 소년의 이름은 고동지, 거친 제주 앞바다에 물질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그리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멍이 든 것입니다. 물론 동지도 알고 있습니다. 제주 바다가 삼켜 버린 엄마는 두 번 다시 동지의 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동지는 믿고 싶습니다. 제주 말로는 ‘조끄뜨레 하기엔 하영멍 섬’,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멀다는,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전설 속 섬 이어도에 엄마가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이어도를 고달픈 이승의 삶 저 맞은편에 있는 낙원, 이승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 사시사철 먹을거리 걱정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무릉도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다 일을 하러 오가던 해녀들은 배 위에서 노를 저으며 고된 노질을 계속할 기운을 내기 위해, 척박한 환경 속 고된 삶의 한을 풀어내기 위해 “이어도사나” 혹은 “이여도사나”라는 후렴구로 시작하기도, 끝맺기도 하는 노랫가락으로나마 이어도를 그렸습니다.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 노래를 <이어도사나>라고 합니다.
구전 민요 <이어도사나> 노랫가락에 담긴 애환이 고스란히 이야기로 전해지는 작품이 바로 『이어도사나』입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이상향의 섬에 투영하여 환상의 섬이자 여인국인 이어도에 다녀온 소년 동지의 이야기를 신화와 역사를 오가며 아름답고도 신비롭게 펼쳐 보입니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전설의 섬,
이어도로 간 소년 동지 이야기
동지는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아버지와 뭍에서 온 새 엄마 그리고 새 엄마가 데려온 대학생 형인 ‘영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주 토박이인 고동지와 뭍에서 온 황영등은 친형제 못지않게 친하지만, 사고방식만큼은 정반대입니다. 이어도를 엄마가 살고 있는 전설 속 여인국으로 여기는 동지와 달리, 영등은 실제로 존재하는 수중 암초로만 바라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동지와 영등의 인식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은 ‘파랑도’라는 이름과 함께 이어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제주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킬로미터 떨어진 이어도의 또 다른 이름은 파랑도입니다. 최고봉이 수중 4.6미터 아래에 잠겨 있기 때문에 10미터 이상의 매서운 파도가 치지 않는 한 눈으로 보기 힘든 타원형의 수중 암초입니다. 이 존재는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 호에 의해 밝혀졌으며, 1984년 2차 탐사 때 파랑도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2003년 이후부터는 해양과학기지가 세워져 해양과 기상 자료를 수집하며, 해경의 수색 및 구난 기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기준에 대한 중국과의 견해 차이로, 현재 이어도는 영유권 분쟁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이어도는 영등의 생각처럼 먼 바다에 있는 수중 암초이기만 할까요? 아니면 동지의 생각처럼 전설 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섬일까요? 누구도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을 안고 해녀였던 동지의 엄마나 어부인 아빠처럼 뭍에서 온 영등도 삶의 원천인 바다로 나섭니다. 이어도의 수중 지형을 연구하러 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로 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섬이라는 말이 진짜라는 듯, 거센 태풍에 영등이 실종되어 버리고 맙니다.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동지의 새 엄마는 집 마당에 판을 벌이고 무당을 부릅니다. 굿판이 무르익을 즈음, 동지는 무당에게 무시무시한 말을 듣습니다.
“네 대신 성님이 바당에 빠지었다.”
동지 대신 형인 영등이 바다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구하려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습니다. 새 엄마는 결국 동지를 제주의 물장오리,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제주를 만든 설문대할망마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산정 호수에 밀어 넣어 버립니다. 동지는 물밑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다 물방울이 솟아나는 구멍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복숭아나무가 울창한 숲과 에메랄드빛 강물이 흐르는 무릉도원이자 꿈에 그리던 엄마의 섬, 이어도에 가 닿습니다.
현실과 환상, 신화와 역사가 맞닿아 있는 이상향의 섬
이어도에 담아낸 신화적 상상력
작가는 이어도의 존재와 현실을 알리고자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제주에 전해 내려오는 여러 설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풀어 갑니다. 구전되어 온 고동지 설화와 영등 대왕 설화가 우리와 친숙한 화소와 더해져 치밀하게 짜여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옛이야기에 흔히 등장하는 계모 이야기입니다. 새 엄마의 손에 이끌려 동지는 환상과도 같이 죽음과 삶 가운데에 존재하는 섬, 이상향의 세계를 마주합니다.
미르 여신이 다스리는 이어도는 금남의 구역, 여인국입니다. 소년 동지가 전생에 다녀왔던 곳인 동시에, 설화 속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이어도는 동지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엄마와 잃어버린 형 영등을 만나게 해 줍니다. 이로써 동지가 꿈꾸었던 이상 세계는 현실이 되고, 동지의 이어도와 영등의 이어도가 하나 됩니다. 제주 사람들의, 나아가 우리 민족의 이상향이며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소중한 우리 땅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엄마는 이승의 기억을 모두 잊어 동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영등은 미르 여신에게 붙잡혀 영등 대왕 설화에서처럼 외눈박이 바다 괴물에게 던져질 운명입니다. 이제 동지는 엄마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붙잡힌 영등을 구해내어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동지와 영등은 무사히 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은유와 상징, 환상과 신화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이어도사나』는 이어도를 집약한 동화입니다. 설화와 같은 옛이야기뿐만 아니라 민요, 헨드릭 하멜의 『하멜 표류기』, 대중가요 등 이어도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 요소가 제주 사투리와 자연스레 어우러집니다. 또한 섬사람의 순수함과 애환, 모정이 그리운 동지의 맑은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서정적으로 그려집니다.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제주 특유의 향취를 풍기는 이 책을 통해 이어도가 가지는 해양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깨닫고,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었던 신비의 섬 이어도의 문화적 가치를 마음에 아로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 고동지 설화
옛날 제주 조천리에 고동지란 남자가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이어도에 도착했다. 이곳은 여인들만 사는 섬이었고, 고동지는 처음 한동안 비바리의 섬 이어도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고향이 그리워져 밤마다 시름에 잠겨 ‘강남으로 가는 절반쯤에 이어도가 있으니, 나를 불러 달라’는 가사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중국 상선을 만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를 사모하던 이어도 여인이 따라나서 둘은 제주에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 영등 대왕(영등 할망) 설화
영등 대왕의 원래 이름은 황영등으로 이승 사람도, 저승 사람도, 용궁 사람도 아니었다. 음력 2월 즈음, 바다에서 큰 바람이 이는 소리를 듣고 바다 위를 보니, 풍랑에 휩쓸린 어부들의 배가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들의 땅으로 떠밀려가고 있어 영등이 배 뒤로 순풍을 불어 돌려보냈다. 그러자 개를 데리고 나타난 외눈박이 거인들이 영등을 세 토막으로 찢어 바다에 던져 버렸고, 영등은 제주에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신이 되었다. 이때부터 제주 사람들은 그를 영등 대왕이라고 부르며, 그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매해 음력 2월 1일부터 보름 동안 영등굿을 지냈다.
작가의 말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아 ‘삼다도’로 알려진 제주에서 억척스럽게 삶을 일궈 온 해녀들에게 바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 줄기 노랫가락으로 고단한 삶에서 맺힌 한을 풀어내며 바다에 몸을 맡기면, 바다는 언제 어느 때건 마다 않고 품어 주었으니까요. 바로 그 노랫가락이 이 책의 제목인 ‘이어도사나’입니다. …… 제주와 이어도가 처한 현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요즈음 어린 친구들은 모를 이어도 전설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지금 제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만을 이야기하는 대신, 애틋하고 아름다운 ‘이어도사나’를 빌려 판타지로 에둘러 보았습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추천사
제주 사람들이 형성해 온 총체적 삶의 무게가 감미롭고도 아아한 글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이어도는 이른바 집단 심리의 감성지도가 만들어 낸 산물입니다. 작가는 실재 해도에 존재하지 않는 이어도라는 섬을 감성지도에 등재시킨 집단 심리를 아주 쉽고도 함축적인 글로 재구성하였습니다. …… 자라나는 미래의 벗들에게 깊은 뿌리를 부여해 주고, 신화적 상상력, 인문적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도록 이어도 이야기가 널리 읽히길 기대해 봅니다.
_주강현(제주대석좌교수,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시리즈 소개
<어린이 문학> 시리즈
즐거움과 감동이 가득한, 고학년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읽을 수 있는 문학 시리즈입니다. 작품 속 배경과 소재에 제약을 두지 않고 국내외의 우수한 작품을 엄선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오늘날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과 1960~1970년대 가난하지만 정감 있었던 생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어느 거리 이야기, 시공을 초월한 시간 여행 이야기 등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작가정신의 <어린이 문학> 시리즈는 독서 능력을 향상시켜 줌은 물론 사춘기 아이들에게 다양한 간접 경험의 장을 제공하여 생각의 폭을 넓히고 마음까지도 자라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