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생의 이면>, <에리직톤의 초상>, <식물들의 사생활> 등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사하며 독특한 소설을 선보이고 있는 중견작가 이승우의 중편소설. 매순간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자기합리화와 명분 없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인간 내면을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다.
나약하고 건조한 주인공에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지닌 한 여자가 다가온다. 그녀는 방 한가운데 욕조를 놓아두고, 밤마다 그곳에서 자신의 상처를 불러내 어루만진다. 남자는 욕조가 놓인 그녀의 방을 드나들며 관계를 맺고 동거를 하지만, 끝내 그녀의 상처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는데….
소설은 주인공의 사랑을 통해 의지가 욕망을 제압해야 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며, 혼자 있을 때조차도 욕망 '그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감정을 숨긴 채 연기하는 현대인의 비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현대인이 사랑을 통해 구원에 다다를 수 없는 이유와 일상의 울타리로부터 탈주할 수 없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저자 소개
저자 이승우는 195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였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소설집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 광고'와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가시나무 그늘', '생의 이면', '내 안에 또 누가 있나', '사랑의 전설',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한낮의 시선', '지상의 노래' 등이 있다. 1993년 '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 2002년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로 제15회 동서문학상, 2007년 '전기수 이야기'로 제52회 현대문학상, 2010년 '칼'로 제10회 황순원문학상, 2021년 '마음의 부력'으로 제44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서평
또 다른 ‘생의 이면’으로서의 사랑의 이면
―연애소설이 아닌 연애소설
『生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꾸준히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소설가 이승우는 항상 새로운 작품 세계를 모색하기 위해 실험을 멈추지 않는 진지한 작가다. “우리 문학으로서는 드물게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글쓰기는 언제나 또 다른 방식으로 읽히고 환기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
『욕조가 놓인 방』은 자신의 감정 일거수일투족을 스스로 검열하고 명분을 세운 후에야 행동의 문턱에 다다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에게는 “생각으로 걷는 길이 발로 걷는 길보다 힘들다.” 그런 그가 마야문명의 유적이 있는 낯선 이국땅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들은 서로에게 매혹을 느끼고, 서로에게 집중한다. 그러나 낯선 이국땅이라는 신화적 공간에서 일상의 시공간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는 그녀의 고독과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과 아들을 비행기 사고로 잃은 후 여자의 삶은 불완전해졌으며 그녀는 물에 집착하고 있다. 바다의 투명한 물빛을 바라보며 “수장水葬이야말로 가장 정결한 죽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녀의 방에는 가구 하나 없고 단지 한가운데 욕조가 있을 뿐이다. 물이 담긴 욕조가 그녀에게는 침대처럼 더없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매일 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몸을 씻으며 욕조 속에 잠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그녀가 힘들어지고 불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