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1936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2년 에 단편 「후송」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한국 문학 작가상, 동서문학상, 김동리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 『강』, 『가위』, 『토요일과 금요일사이』 등이 있고, 장편으로 『달궁』, 『봄꽃 가을열매』등이, 산문집 『지리산 옆에서 살기』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임명진 교수(전북대학교 국문학과)는 작가 서정인을 일컬어 "그는 게으른 독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뿌리와 날개' 제1권 8호. 1994)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등단작 '후송(後送) 이후 40여년의 창작활동 동안 그가 보여준 글쓰기의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서정인에게 있어서 문학은 단순히 작가의 내적 경험의 소산이라거나 세상을 읽어내는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문학이 사물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줌으로써 '진리'에 이를 수 있고 타락한 시대의 병리를 고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문학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진리의 빛으로 시대를 치유하기 위한 치열한 모색인 것이다.
문학비평가 우찬제 교수(서강대학교 문학부)는 서정인 글쓰기의 이러한 방식을 더 나아가서 그러한 서정인의 글읽기를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한다. "서정인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 질문에 동참하는 것과 한가지다. 소설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탐문 도정을 그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그가 던진 화두를 끝까지 집요하게 따라갈 수 없는 '게으른' 독자들은 서정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진리'로 접근해가고자 하는 서정인 문학의 문제의식의 소산인 [말뚝]은 '사팔뜨기' '거푸집' '용병대장'등 작가가 문예지에 발표한 '르네상스 탐문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따라서 [말뚝]은 시리즈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 하나의 완성된 구조로서 독립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용병대장'등 르네상스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을 참고해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하면서도 "그것없이 이것만 읽으면 그만큼 독자의 몫이 커서 더 좋을 듯하다."고 말한다.
[말뚝]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수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위치해 있다. 그러나 내용 중에 사보나롤라가 직접 등장하는 장면은 형을 언도받는 도입부와 형을 집행받는 마지막 부분뿐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그 밖의 직접적인 서술은 극히 드물며 그가 직접 '말하는' 부분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는 형 집행을 며칠 앞두고 보티첼리를 중심으로 당대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수사를 구하기 위해 거사를 모의하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