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사랑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음악과 여행과 사랑과 추억의 감성충전 앙상블
소설가 박상의 ‘본격 뮤직 에쎄-이’
작가정신의 ‘슬로북(slow book)’은 ‘마음의 속도로 읽는 책’으로,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자 일상의 혁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에세이 시리즈다. 박상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슬로북’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문장과 서사로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아온 소설가 박상은 문인 밴드 ‘말도 안 돼’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록 정신’을 주제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등 문학과 음악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음악에 대한 오랜 열정과 집념으로 다져진 탁월한 감식안이 돋보이는 이번 책은 ‘음악’과 ‘여행’을 주축으로 웃고, 울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짠하고 진한’ 인생 메들리를 들려준다.
그의 에세이는 잔잔하고 사색적이며 위로를 건네는 식의 기존 에세이와는 차별화된다. 문학계에서 보자면 ‘전위적’이라 할 만한 유머를 구사하는 그의 소설들처럼, ‘생활 밀착형’ 언어와 ‘병맛’ 혹은 ‘아재’ 개그가 어우러진 문장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에세이가 이렇게 웃겨도 되나?’라는 생각을 할라치면, 깊이 있는 음악적 조예와 식견이 끼어들고, 거기 얽힌 일상다반사를 웹툰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썰’로 풀어낸다.
2014년 9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문화웹진 <채널예스>에 연재한 칼럼을 수정․보완하고, 일부 미발표 원고를 추가해 엮은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가요, 팝, 록, 클래식 등 장르를 넘나드는 선곡이 돋보인다. 한국 록의 전설 산울림과 대중 음악계를 이끈 고(故) 신해철, 90년대 모던록 듀오 유앤미 블루를 비롯해 대중적으로 유명한 제이슨 므라즈와 아바, 전설적인 록 그룹 롤링 스톤스를 거쳐 크리스 가르노, 데르디앙, 마릴린 맨슨까지, 올드팝과 최신 음악도 아우른다. 그 밖에도 보사노바를 대중화한 스탄 게츠와 스탠더드 캐롤송의 멜 토메, 베토벤까지, 박상의 선곡은 그야말로 다이내믹하고 전방위적이다. 다채로운 선곡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익살맞고 장난기 넘치는 일러스트. 한 장의 그림 안에 젊은이들의 불안과 방황,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절묘한 상상력과 따스한 감성으로 포착하여, ‘한 컷 그림왕’으로도 불리는 김나훔의 작품은 작가의 글과 어우러져 신선한 ‘케미’를 선사한다. 책 말미의 ‘보너스 트랙’에는 ‘본격 여행기’ 네 편을 실었다. “여행에서나 소설에서나 낯선 것을 추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작가의 신조와 철칙대로, 사진 한 장 없지만 읽을거리 가득한 ‘색다른’ 여행기는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작가에게 삶은 ‘여행’이고, 삶을 버티는 필수 에너지원은 ‘웃음’이며, 아름답게 채색해주는 것은 ‘음악’이다. 그리고 사랑은 바로 이 모든 것들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때론 비루하고 보잘것없어 보일지언정 끝끝내 놓을 수 없는, 삶에 대한 끈끈한 애정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에 눈뜨게 해준 노래들을 짚어가며, 자신을 스쳐 간 사랑이라는 이름의 대상들을 하나씩 열거한다. ‘부디 누군가와 제발 썸 타게 해주세요’ 하고 절규하는 외로움도 있고,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풋사랑에 대한 그리움도 있으며, 옥탑방 아지트에 모인 친구들과 나누던 친밀함과 연대감도 있다. 박상 작가의 모든 것이 담긴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수준 낮고 공허한 단맛이 아니라 꿀맛”이라는 생의 비법 같은 사랑을 소리 높여 노래하고 있다.
글 _ 박상
언젠가부터 좋아하는 음악의 노랫말이 잘 기억나지 않기 시작했다. 웃기게 된 건지 바보가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일 거다.
할 수 없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의 단어를 ‘오뎅’으로 바꿔서 부르곤 했다. 예를 들면 김광석 님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중에서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의 ‘술잔’이 생각 안 나면 ‘돌아와 오뎅 앞에 앉으면’ 하는 식으로 오뎅을 막 집어넣었다.
그러다 보니 아는 노랫말에도 ‘오뎅’을 집어넣어서 부르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웃기게 된 건지 바보가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일 거다.
어른들은 늘 내게 말했다.말은 씨가 되니까 조심해야 한단다. 나는 생계가 막막해 인천공항 면세 구역의 한 어묵 가게에서 최근까지 ‘오뎅’을 팔았다. 다국적 진상 손님이 많아 정말 ‘오뎅’ 같았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짝짝이 오뎅과 고양이와 하드락」이 2006년 동아일보 신춘오뎅에 당선되며 등단하고 소설집 『이원식 씨의 오뎅폼』, 장편소설 『오뎅이 되냐』 『15번진짜 오뎅』 『예테보리 오뎅탕』 등을 출간한 것 같다.
SIDE A
Intro
겟 럭키 아일랜드ㆍ다프트 펑크_Get Lucky
감상적인 플랫폼과 대치하다ㆍ에피톤 프로젝트_이화동
외로운 날의 펑크 정신ㆍ노브레인_한밤의 뮤직
드레스덴 축제의 매혹적인 단조ㆍ이오시프 이바노비치_다뉴브강의 잔물결
이탈리아의 친절한 헤비메탈ㆍ데르디앙_Black Rose
일요일 아침 이스트 런던ㆍ벨벳 언더그라운드_Sunday Morning
낡은 감상실의 핑크 플로이드ㆍ핑크 플로이드_Wish You Were Here
삭막함의 반대말ㆍ카멜_Stationary Traveller
걱정해봤자 소용없잖아ㆍ전인권_걱정 말아요 그대
무엇이 촌스럽단 말인가ㆍ롤링 스톤스_Paint It Black
아으,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고ㆍ김창완 밴드_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사막의 방광 고비ㆍ노라조_니 팔자야
에너지를 촉진하는 노동요ㆍ메탈리카_Whiskey In The Jar
베를린에서의 성급한 반항심ㆍ람슈타인_Du Hast
공항 하면 딱 떠오르는 노래ㆍ거북이_비행기
지하에서 우주로ㆍ비틀즈_Across The Universe
울고 싶을 때 듣는 음악ㆍ블론드 레드헤드_Misery Is A Butterfly
사랑에 빠지고 싶을 때ㆍ이승철_My Love 145
후진 분위기를 경감시키는 감성 백신ㆍ크리스 가르노_Relief
현실을 이겨내는 댄스 댄스ㆍ아바_Dancing Queen
SIDE B
아플 때의 음악 친구ㆍ건스 앤 로지스_Patience
괜찮고, 잘될 거라는 단맛ㆍ이한철_슈퍼스타
안녕 플루토ㆍ데이비드 보위_Space Oddity
부조리에 저항하는 독보적 관록ㆍ블랙홀_라이어
가을 타다 봉변ㆍ마릴린 맨슨_Sweet Dreams
울림 있는 목소리들ㆍ비욘드_광휘세월
공공장소의 음악 수준ㆍ스탠 게츠&주앙 질베르토_O Grande Amor
세상에 평화를 좀ㆍ카에타누 벨로주_Cucurrucuc Paloma
나가사키에서 힘 빼고 릴렉스 크리스마스ㆍ멜 토메_The Christmas Song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ㆍ다이도_White Flag
음악과 함께 행운을 빌어요ㆍ제이슨 므라즈&콜비 카레이_Lucky
우수의 신호등이 켜질 때ㆍ정차식_나는 너를
헬조선에 기 빨리지 말자구요ㆍ뉴클리어_악몽
위험하고 아름다운 추억ㆍ못_날개
봄밤의 추억 앓이ㆍ버스커 버스커_봄바람
이게 봄입니까ㆍ유앤미 블루_비와 당신
기차 여행과 신해철ㆍ넥스트_불멸에 관하여
그때 들었다면 좋았을 음악ㆍ빅뱅_Loser
음악은 소음을 이긴다ㆍ베토벤_피아노 협주곡 제3번
Bonus Track
카오산 로드의 외다리 타법ㆍ 물개가 웃는 호수 바이칼ㆍ저 바람둥이 아닌데요ㆍ 숙취와 엿 바꾼 파리ㆍ
Thanks To
“음악은 소음을 이긴다”
까칠하고 유별난 리스너 박상이 들려주는 ‘남다른’ 음악 이야기
대형마트의 강박적인 광고음악이 싫어 장보기를 포기하고, 레스토랑에서 어설프게 R&B를 흉내 낸 가요가 흘러나오자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소음 때문에 한 해 동안 이사를 세 번이나 한 적도 있다. 모두 지나치리만치 예민한 청각으로 인해 생긴 일이다.
다행히도 작가는 자신만의 소음 극복법을 발견한다. 바로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이웃집의 TV 소리, 창밖의 새 울음소리부터 탐욕과 위선이 들끓는 정치판과 자본주의로 점철된 사회, 무자비한 테러와 폭력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크고 작은 소음들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일깨우는 리듬과 박자, 선율에 따라 삶은 가까스로 균형감을 회복하고 다시금 생동감을 얻는다. 이런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은 과연 어떤 것인지, 또 무슨 남다른 사연과 의미가 있을지, 한 곡의 감상이 끝날 때마다 그다음 곡이 못 참도록 궁금해지는 이유다.
음악은 삭막함의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음악의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_72쪽
일상을 특별한 시간과 장소로 만들어주는 음악, 그리고 여행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로 시작해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으로 끝나는 이 책을 견인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거침없고 위트 넘치는 문체로 녹여낸 솔직담백한 여행 이야기들. ‘본격 뮤직 에쎄-이’를 표방하면서도, 한 곡의 음악을 소개할 때마다 여행지에서 겪은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따라붙는 구성도 재미있다. 스페인, 런던, 독일, 이탈리아, 중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10년간 전 세계 각국을 누비며 들었던 음악에 관한 회고담이 주를 이루는 만큼 ‘여행 에세이’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작가는, “마치 음악 칼럼인 듯, 여행 칼럼인 듯, 국제 시사 칼럼인 듯 헷갈리면서도 질 좋은 읽을거리를 독자님들께 선사하겠다는 일념으로 귀찮은데 굳이 거기까지 다녀온 것”이라고 너스레를 떠는데, 일상을 특별한 시간과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음악’과 ‘여행’이 만나 더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선사한다.
베네치아에 도착할 때까지 <이화동>의 멜로디와 가사는 끝내 떨쳐지지 않았다. 사실, 떨치고 싶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문을 열어줄지도 모르니까. _27쪽
“음악은 상실감을 딛고 달려가 껴안을 환상의 나무……”
자유로운 영혼이 건네는 따스하고도 위대한 메시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춤을 추었다.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처럼, 작가의 인생 또한 순탄치만은 않지만 결코 ‘흥’을 잃지 말 것을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세상의 ‘풍파 나부랭이’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 여유만만한 극복의 메시지는 음악이 항상 곁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빙자한 외화벌이 알바 중에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듣던 노래, 헤어진 옛 애인의 머릿결과 표정, 미소와 함께 떠오르던 노래, 그리고 찌질한 우리들이 인생의 찌질함을 함께 버텨내려 했던 거룩한 협력의 송가와 평화 따위 엿 바꿔 먹은 이 시대의 영가(靈歌)…….
음악과 삶에 대한 진솔하고도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때론 따뜻하고 때론 애잔하며 때론 유쾌하게 흐른다. 그의 삶을 웃기고 울린 노래들과 함께 작가는 말한다. “인생이란 어느 정도 흥겨워야만 유연하게 유지된다. 음악은 언제나 무언가를 견디게 해주지 않았던가.”
분위기에 압도되어 몸을 흔들다 보니 내 삶을 짓누르던 궁상, 공포, 불안 따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음악과 춤을 통한 위대한 극복. 그것이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의 메시지가 아니었던가. _166쪽